‘슈가 인플레이션’으로 불리며 가공식품 물가 상승의 주요 이유가 됐던 설탕값이 떨어지고 있다. 주요 생산지의 날씨 변화와 국제 무역 위축 등의 영향 등이 얽히며 전고점 대비 34% 넘게 떨어졌다.
◆1년전으로 돌아간 설탕 가격
23일 뉴욕 국제선물거래소에 따르면 5월물 ‘설탕 N.11 선물’가격은 지난 22일(현지시간) 기준 파운드당 17.99센트로 거래를 마쳤다. 1년 전(19.40센트)보다 낮다. 2022년 10월 수준으로, 고점(2023년 10월) 대비 34.3% 떨어졌다. 2022년말부터 지난해말까지 2년간 20센트를 웃돌았던 설탕 가격은 올 들어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설탕 N.11 선물은 설탕 원료인 원당(原糖)의 국제 거래 기준이다. 설탕은 커피, 코코아, 면화, 오렌지주스와 함께 5대 연성소비 원자재 중 하나다.
설탕 가격은 수요 변화가 크지 않아 공급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각각 전세계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브라질과 인도의 날씨가 좌지우지한다. 국제 원유도 중요한 요인이다. 국제 원유 가격이 높아지면 사탕수수 생산자들이 바이오 에탄올 생산량을 늘린다. 2022년~2023년엔 원유 가격 상승과 브라질의 건조한 날씨, 인도 정부의 설탕 수출 금지 정책 등이 겹치며 설탕 가격을 밀어 올렸다.
최근의 가격 진정세도 이 셈법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브라질 설탕협회에 따르면 중남부 지역의 4월 생산량이 전년 보다 15~20% 가량 높다. 예년보다 빠른 수확에 나섰고 작황도 좋았다. 브라질 가격예측 기관인 데이터그로(Datagro)는 2025~2026 브라질 중남부 설탕 생산량을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한 4240만t으로 예측했다. 2025~2026 수확기에 전세계 공급이 충분하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중장기 가격 압력도 낮아졌다. 브라질은 4월부터 수확하지만, 인도는 2~3월에 파종한 뒤 연말부터 4월까지 수확하는 구조라 공급시기가 정반대다. 상반기엔 브라질, 하반기엔 인도가 중요하다. 인도 기상청은 올해 인도의 계절성 우기인 몬순 시기에 평년보다 5% 많은 강수량을 예보했다. 사탕수수는 강수량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관세 전쟁이 촉발한 무역 위축으로 원유값이 하락하면서 에탄올 전환 비율도 평년보다 2~3%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설탕 수출 정책이 바뀔 가능성과 원유 가격 등에 따라 설탕 가격도 변동성을 겪게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설탕값은 최대 41% 상승
설탕 가격 인상은 과자, 음료 등 가공식품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설탕 전국 평균 판매가격이 40% 넘게 오르기도 했다. 청정원 유기농 황설탕 454g은 1년 전 전국 평균 판매가가 3580원에서 지난 18일 기준 5080원으로 41.9% 올랐다. 큐원 갈색설탕 1kg(21.35), 백설 흑설탕 1kg(4.3%) 등도 줄줄이 가격이 인상됐다. 대표제품인 백설 하얀설탕 1kg는 5년전 1907원에서 올해 2627원으로 연평균 6.6% 상승했다.
설탕 가격 하락으로 가공식품 인상 릴레이에도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다만 설탕은 원재료 매입 계약과 실제 판매 사이에 3~6개월씩 시간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 떨어진 가격은 하반기에나 원가에 반영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재료값이 떨어져도 전기세, 인건비 등은 계속 오르는 구조라 가격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