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수록 감동은 작아진다[허명현의 클래식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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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좋은 영화감독은 중요한 감정을 대사로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기우(최우식)는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잠시 희망이 생긴다. 하지만 영화는 이내 현실로 돌아온다. 여기서 감독은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상상과 현실을 교차시키는 장면만으로 그 희망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독은 답을 알려주는 대신 생각할 시간을 남겨 둔다. 그 짧은 여백 덕분에 영화는 끝났는데도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우주에 남겨진 쿠퍼(매슈 매코너헤이)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자녀들이 보내온 영상을 본다. 어린아이였던 아들은 어느새 가정을 꾸린 어른이 되었고, 오랫동안 소식을 끊었던 딸은 마침내 영상을 보내며 말한다. “오늘은 아빠가 떠났던 나이가 된 날이에요.” 쿠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감독은 그의 마음을 결코 대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떨리는 숨과 눈물, 그리고 흘러가 버린 시간만으로도 우리는 그의 상실감과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좋은 예술은 설명보다 여백을 선택한다. 물론 모든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편이 훨씬 쉽다. 관객이 언제 웃어야 하고, 언제 슬퍼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모두 설명하는 순간 오히려 그 감정은 작아진다. 관객은 이미 정해진 감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설명을 멈추면 관객은 배우의 표정과 침묵, 화면의 분위기를 스스로 읽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감정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경험하는 것이 된다. 문학도 그렇다. ‘노인과 바다’에서 헤밍웨이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감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결국 상어들에게 고기를 모두 빼앗긴 채 뼈만 남은 배를 끌고 돌아온다. 작가는 그 장면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산티아고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얼마나 허무했는지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걸음과 침묵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패배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읽어 낸다. 헤밍웨이가 말한 ‘빙산 이론’도 같은 맥락이다. 독자가 보는 것은 빙산의 일부분뿐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완성된다. 설명을 줄인 만큼 작품은 더 깊어진다. 음악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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