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나. 영락없는 너야.”
조선 한양 인왕산 자락의 별서(別墅·농사를 지으려 따로 지은 집). 임금의 하나뿐인 아우이자 조선 거대 상단의 뒷배인 ‘한평대군’(김재욱)은 자신을 찾아온 ‘홍랑’(이재욱)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홍랑은 조선 거대 상단의 외아들로,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사라졌다가 10여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한평대군은 자신이 밀어주는 거대 상단의 후계자인 홍랑에게 확신을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곧 어긋나기 시작한다. 돌아온 홍랑이 실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랑은 모종의 이유로 한평대군에게 복수를 시도하면서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연사에서 양손 자르기로…복수 방식 달라져
1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탄금’은 장다혜 작가의 장편소설 ‘탄금: 금을 삼키다’(2021년·북레시피)를 원작으로 한 미스터리 활극이다. 조선 후기, 실종됐던 최고 상단의 후계자 홍랑이 성년이 돼 집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복수 서사를 담았다.
● 시망스럽다, 걸오하다…고어가 배우 연기로 살아나
‘시망스럽다’(짓궂은 데가 있다), ‘걸오하다’(성질이 거칠고 사납다) 등 홍랑의 성격을 묘사하는 소설 속 고어가 배우의 연기로 살아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원작자인 장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드라마에선 낯설지만 아름다운 순우리말 정서가 화면의 미장센이나 배우들의 연기로 전달됐다”며 “원작의 목차가 24절기를 따라가는 만큼 드라마도 한국의 사계절을 오롯이 담아냈다”고 했다.
드라마 속 의상도 눈길을 끈다. 홍랑의 누이 ‘재이’(조보아)의 냉철함과 한은 단아하고 절제된 색감의 한복으로 표현됐다. 거대 상단의 안주인 ‘민연의’(엄지원)의 욕심과 야망은 화려한 문양의 복식으로 드러났다. 김홍선 감독은 13일 제작발표회에서 “세계에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며 “한복을 단지 패셔너블하게 다루기보다는 원단의 소재와 질감에 신경 쓰면서 기본에 충실한 사극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뼈대는 시나리오”…작곡가 호텔리어 출신 소설가원작을 쓴 장다혜 작가는 프랑스에 거주하며 첫 장편소설을 냈다. 프랑스의 호텔 경영대학에서 유학한 뒤 유럽에서 호텔리어로 일했다. 작곡가로 활동하며 이수영의 ‘눈물이 나요’, 박혜경의 ‘A Lover’s Concerto’ 등 유명한 노랫말을 써냈다.
‘탄금’의 시작은 시나리오였다. 2016년,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실종 아동 귀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놀이’처럼 시작했지만, 장면과 대사가 불어나면서 원고는 비대해졌고, 결국 그는 시나리오를 소설로 전환했다. 완성까지는 꼬박 5년이 걸렸다.
“이 소설의 처음은 영화 시나리오였습니다. 지문이 방대해지면서 소설로 그 형태를 바꾸게 되었는데 독자들이 뼈대가 된 시나리오를 자연스레 느끼시는 듯 해서 영상화가 조금 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나 해요.”
드라마화가 결정됐을 때 그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느꼈다고 털어놨다. “드라마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컸으나 소설의 내용상 공중파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몇몇 지점들이 존재했기에 그것들이 어떻게 각색, 순화될지에 관한 의문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표현이 조금 더 자유로운 넷플릭스로 방영이 결정되면서 그 우려까지 말끔히 해소되어 비로소 오롯이 기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캐스팅에 대한 소감도 솔직했다. “25년 넘게 외국에 살고 있고 한국의 요즘 드라마를 많이 보지 못해서 배우들을 잘 모른다. 그래서 주인공에 이재욱, 조보아 배우님이 캐스팅됐을 때 오히려 아무 편견 없이 홍랑과 재이를 곧장 대입해 볼 수 있어서 무척 신선하고 좋았다”고 했다. 또 “소설을 쓰는 내내 남자 서브 주인공인 ‘무진’ 캐릭터에 강하늘 배우님의 이미지를 차용하였기에 내심 캐스팅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디어나 즐길 거리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일회성으로 반짝 소모되고 잊히는 것들이 많은 요즘이다.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다음 작품인 조선 시대 판소리 명창 이날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이날치, 파란만장’(북레시피) 역시 영상화가 추진 중이다. 그는 “지금도 소설을 쓸 때 시나리오처럼 각 장면마다 번호를 붙이고 등장인물, 장소, 시간을 적어 구체화 시키는 습관이 있다. 시간 흐름과 장면 연결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장점과 더불어 편집과 재구성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라며 “소설의 뼈대가 시나리오라는 점이 아마도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영상화를 떠올릴 수 있게 하지 않나”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