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 chatGPT로 만든 ‘골든에이지’의 이미지. |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미국 유학 시절 고등학교에서 AP US History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역사 수업이란 대개 그 나라의 초창기부터 차례대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수업의 시작은 특이하게도 19세기 말을 일컫는 ‘Gilded Age’, 즉 ‘도금의 시대’였다. 그때는 잘 느끼진 못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 왜 수업을 그 시기로 시작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도금(鍍金)이란 것은 어느 금속 물체에 다른 금속(보통 금박)을 입히는 것을 지칭한다. 19세기 말 특히 1870년대부터 1900년까지의 미국은 왜 ‘도금의 시대’라고 불리는가?
19세기 말은 미국이란 국가에 그야말로 급성장의 시기였다. 1865년에 남북전쟁이 끝나고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과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Grant) 대통령이 집권하며, 미국은 전후 재건(reconstruction)과 함께 전국적인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보통 전쟁 이후 남아도는 전쟁 물자의 재고 처리 등등을 위시한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경제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오히려 남북전쟁은 철도의 발전과 맞물리며 미 경제지표의 급성장을 얘기했다.
미국 본토는 미개발지역이 매우 많았기에(심지어 지금도!)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가동되었던 인력은 오히려 미개발지역의 발전을 낳았다. 이는 국가경쟁력의 향상으로 귀결됐다. 미국이란 초강대국의 출현은 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자리를 잡은 순간부터 예견된 바였지만, 그것이 확실시되는 기점은 바로 남북전쟁이라는 큰 위기가 지나간 직후라 할 수 있다.
급성장기에는 내부적 고통도 있기 마련이다. 옛 로마 공화정도 제정으로 탈바꿈하기 전 백여 년간 겪었다. 미국 또한 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졌다. 정치는 정·재계의 유착 탓에 썪어갔다. 인권, 특히 이 급성장의 주역인 노동자들의 권리는 더 등한시됐다. 물론 노동조합과 인권 운동의 대두로 이어졌지만, 이것 또한 어느 정도 해결되기까지 20세기 초중반까지 수십 년이 걸릴 터였다. 이렇듯 19세기 말의 미국은 외적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파악조차 힘든, 그런 ‘도금의 시대’였다.
도금의 시대가 과연 그 당시 미국의 실상만을 일컫는 고유명사일까? 아니다. 어찌 보면, 수십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대한민국도 도금의 시대라고 불려도 과장이 아닐 듯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다. 그 나라에 대한 것은 책이나 여느 매체로 접하는 것보다, 직접 그 나라에 가서 접해보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열 살 때 도미(渡美)한 후 계속 외국에 있던 필자는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렸던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도피성 귀국’을 한 후에야 우리나라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귀국 후 느낀 바로는 우리나라야말로 현재 도금의 시대를 겪고 있는 듯하다. 인간에게 중요한 ‘의식주’ 중 하나인 ‘주’(住) 가 적어도 서민들에게는 위협받고 있다. 집값도, 전셋값도 천정부지로 높아졌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고 우리나라 경제 특성상 효과적인 전세 제도가 감당 안 되기 때문에 점점 더 서민들은 월세나 반전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월 지출이 많아지는 서민들은 보편적인 방법으로 자산을 불리기 갈수록 힘든 것이 실상이다.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빈부격차는 이미 이런저런 이유 탓에 분열된 대중을 더욱 분열시킬 뿐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경시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병헌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깡패(조승우가 정말 “깡패야~”라고 부른다)로 분했고, 조승우는 맛깔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검사로 나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두 배우가 대립각을 세우며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영화 중반부부터 물과 기름 같던 둘은 야합하여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몇몇 영화 팬들은 “아, 또 전라도 양아치에 경상도 검사라는 클리셰?”라며 탄식을 할 수 있을 법하다, 그 안 어울리는 조합이 단결하여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는 것에서 관객들이 느낄 카타르시스를 감독은 충분히 염두 했고, 그 영화적 장치가 오히려 그 카타르시스를 배가시켰다는 것에 한 표를 주고 싶다.
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혼란스러운 지금, 이제 우리도 ‘도금의 시대’를 넘어서 ‘화합의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 서형민 피아니스트=베토벤 국제콩쿠르 우승자 출신으로 글로벌 활동을 하는 국내 손꼽히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서형민 피아니스트는 각국을 오가면서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고 인식해 다문화와 관련된 글로 ‘동거동락’(同居同樂)이라는 미래를 함께 꿈꾸게 됐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