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정년 65세 연장에 대해 연내 입법 추진을 예고하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넥스트포티', 즉 2030세대의 분노가 들끓었다. 경기 침체에 챗 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신규 채용이 줄면서 청년들의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포티들이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급변하는 시장 속 희망퇴직이라는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 "'서울 자가 대기업 김 부장' 보고 눈물"
지난 수년간 기업들의 희망퇴직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왔다. 이제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희망퇴직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고용 불안이 40대까지 퍼지고 있다. 여기에 생성형 AI 등 기술 변화로 경제와 기업 환경이 급작스럽게 바뀌면서 적응도 어려워지고, '탈출 계획'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를 찍으면서도 디지털 전환이 대거 이뤄지고 있는 은행권이 대표적인 예다. 2024년 국내은행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5.5% 증가한 총 22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자 이익만 60조원에 육박했다. 그런데도 KB·신한·우리·하나·NH 등 5대 은행의 희망퇴직 규모는 2022년 2357명, 2023년 2392명, 2024년 1987명으로 3년 연속 2000명 안팎에 달했다. 올초에도 2000명이 넘는 인원이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SK텔레콤은 AI 사업 총괄을 위해 구성한 사내회사(CIC)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 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AI 역량을 보유한 구성원들을 재배치하는데, 소속이 바뀌어 원치 않는 경우 특별 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유통계에서는 세븐일레븐은 최근 40세 이상 및 직급 8년 이상, LG생활건강은 35세 이상 면세점·백화점 근무 판매판촉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기로 했다.
금융계 직장인 이모씨(44)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JTBC 드라마)의 김낙수 모습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열었다. "세상은 두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나는 하루하루 살아남느라 정신이 없어요. 기업들이 점점 중간관리자까지 줄여나가는 분위기인데, 위로 올라갈수록 바늘구멍이지요.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 막막합니다." 이 드라마는 영포티라 할 수 있는 X세대의 애환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2030, '주니어 종말' 날벼락
한국 경제는 저성장 흐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세계 12위인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2030년 15위로 떨어질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전망했다. 이는 1%대 저성장이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0.9%로 1%를 밑돌고, 내년도 1.8%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이 쉬울 리 만무하다.
2030세대는 경기 침체와 생성형 AI가 만나 '주니어의 종말'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사정에 성장에 시간과 돈이 드는 신입보다 생성형 AI 활용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기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국내외 고금리 기조와 경기침체로 자본시장이 위축되면서 국내 벤처 및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는 현상도 가뜩이나 좁은 2030세대의 취업 문턱을 더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직 활동을 해야 하는 2030세대에게 노동 시장에 진입한 영포티들을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4050세대는 조금 일찍 태어나 운이 좋은 세대고 자신들은 일자리도 못 구하는 운 나쁜 세대로 규정한다.
특히 문과생들에게 최근 상황은 재앙에 가깝다는 말까지 나온다. 세무사가 꿈이어서 경영학과에 진학한 대학생 박모씨는 최근 꿈을 접었다고 한다. 세무사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전망이 여러 곳에서 나온 데다, 본인이 세무 AI 서비스 앱을 사용해보고 무력감을 느끼면서다.
이런 와중에 생성형 AI는 청년들의 스펙 쌓기에 필수가 돼가고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 집계상 챗GPT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연령대는 20대로 30%다. 취준생 이모씨는 "취업 박람회나 구글 같은 기업에서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AI를 잘 다루는 인재라고 자주 언급해서 확신을 가지고 AI를 활용해 포트폴리오를 채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난이 극심해지다 보니 아예 취업 의지를 상실한 청년들도 쏟아지고 있다. 8월 기준 이유 없이 쉬었다는 15~29세 청년층 인구는 약 45만명으로 전체 17%를 차지했다. 쉬었음 인구는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을 포기하는 이들이 대부분으로, 사실상 실업자로 간주하기도 한다. 실제 이중 전년 대비 3.3%포인트 늘어난 34.1%가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30대 쉬었음 인구는 32만8000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8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 이과 채용도 바늘구멍
한국은행의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이슈노트에 따르면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에서 청년 고용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년간 청년층 일자리 21만1000개가 줄었는데, 이 가운데 98.6%(20만8000개)가 AI 고(高) 노출 업종이었다는 것. 반면 50대 일자리는 같은 기간 20만9000개 늘었는데 그중 70%가 AI 고 노출 업종이었다. 한은은 "AI 확산 초기에 주니어 고용이 줄어드는 반면 시니어 고용은 늘어나는 '연공편향 기술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사·채용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IT업계 채용 공고는 1년 전에 비해 13.4% 감소했다. 매년 늘어나던 경력직 개발자 채용 공고도 5.3% 감소했다.
코로나19 이후 채용 수요가 급증했던 소프트웨어 직군도 채용 전반에 변화가 예고됐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SW 개발자 채용 변화 전망과 생성형 AI' 연구를 통해 "생성형 AI의 확산은 향후 소프트웨어 개발자 신규 채용 수요를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초급 개발자 일자리가 생성형 AI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신규 채용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했다.
AI 서비스를 개발 중인 게임 업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직군을 막론하고 IT 업계에서 신입 채용 자체가 줄어든 것은 맞다. 다만 2~3년 차 경력 채용 수요는 늘어난 곳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브 코딩이 필수가 되면서 생산성이 확 늘었다. 신입 교육에 들어가는 피로함, 비용 때문에 완전한 신입보다는 바로 현장 투입은 가능한 중고 신입을 선호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IT 업계 관계자는 "조직이 아무리 간소화를 원해도, 꼭 수행해야 하는 큰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인력이 꼭 필요하다"며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작은 조직에서라도 경력을 조금이라도 쌓으면 기회가 계속 생긴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 정년 연장에 또 떠는 청년들
여기에 민주당이 현재 만 50세인 정년을 65세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연내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해 고용 시장 진입을 앞둔 청년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고용 시장에 진입만 한다면 정년 연장을 반길 수 있겠지만, 아직 취업도 안 된 이들에겐 경기침체, 생성형 AI, 정년 연장은 '3대 악재'라 할 수 있다.
정년 연장은 노인 인구 급증과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정년 연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서는 연구 결과가 혼재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년 연장으로 1명의 고령자 고용 증가가 예상될 때 약 0.2명의 청년 고용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를 2019년 내놨다. 반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23년 고령 고용이 1명 늘 때 오히려 15~29세와 30~44세 근로자도 각각 0.37과 0.61명 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행과 중앙대가 한국노동연구원 사업체 패널조사를 이용해 분석하기로는 법정 정년 연장이 고령층 근로자와 대체 관계에 있는 중장년층 근로자의 고용을 감소시킨 것으로도 나타났다.
확실한 것은 청년들의 불안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7월 20~34세 구직자 500명에게 '65세 법정 정년 연장 시 청년층 신규 채용의 영향'에 관해 물은 결과, 미취업 청년 대다수인 61.2%가 "감소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영향 없음" 32.4%, "증가할 것" 6.4%였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0월 29일 '세대 공존 일자리 토론회: 정년연장과 청년의 미래'에서 중장년층의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청년층 일자리 잠식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퇴직 후 재고용을 제안했다.
그는 2023년 한국노동경제학회에 기고한 '정년연장의 청년층 일자리 효과'에서 임금 조정이 동반되지 못한 정년 연장은 청년 고용에 부정적일 가능성을 거론했다. 60세 정년 도입의 청년층 고용효과를 추정해보니, 23~27세 청년층 전일제 임금 근로 일자리는 6.0%, 상용직 일자리는 4.5%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 것이다. 장년층 고용이 1명 증가할 때 청년층 전일제 일자리는 분석 표본에 따라 적게는 0.29개, 많게는 1.14개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정년연장특위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청년 고용 위축 및 기업의 부담 증가 가능성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특위에 참가하는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청년층 입장이 부차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면서 "노사 모두 어떤 확정적인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양하고 유연하게 논의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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