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약임상 1위' 베이징에 뺏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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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신약 개발 임상시험이 가장 많은 도시였던 서울이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임상연구 수준이 빠르게 높아진 데다 국내 의정 갈등 사태로 전공의가 대학병원에서 대거 이탈하며 연구 역량이 약해진 여파다.

28일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제약사 주도 의약품 임상시험에서 서울 지역 의료기관 점유율은 1.32%로 베이징(1.4%)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서울이 최고 순위를 내준 것은 7년 만이다. 과거 세계 최고 암센터 MD앤더슨이 있는 미국 휴스턴과 1·2위를 엎치락뒤치락하던 서울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계속 1위를 유지했다. 베이징은 2021년 이후 줄곧 서울에 밀려 2위를 기록하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임상시험 점유율 3위 도시는 중국 상하이(1.07%), 4위는 미국 휴스턴(0.98%)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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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약임상 1위' 베이징에 뺏겨

서울은 대형 병원이 밀집해 환자를 찾기 쉬운 데다 의료진의 임상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 그동안 글로벌 임상시험 ‘메카’로 자리 잡은 이유다. 서울엔 1000개 넘는 병상을 갖춘 ‘대형 대학병원’이 7개 있다. 국내 최대 의료기관인 서울아산병원 병상은 지난해 기준 2432개다. 제약사들이 임상시험에 참가할 환자를 단시간에 많이 모집하고, 여러 의료기관 내 심사 절차를 각각 통과해야 하는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국 의료진의 신약 임상연구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의료진이 제안한 아이디어로 탄생한 글로벌 신약도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간암 면역항암제 ‘임핀지’를 담도암 치료제로 개발한 게 대표적이다. 오도연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아스트라제네카에 제안했고, 한국 의료진 주도로 임상시험을 거쳐 글로벌 표준 치료법이 됐다.

중국 베이징이 신약 개발 임상시험에서 서울의 독보적 지위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께부터다. 중국의 신약 개발 역량이 가파르게 성장하자 ‘중국에서 낸 임상 데이터는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서서히 걷혔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28일 공개한 지난해 국가별 글로벌 임상시험 순위에서 중국은 점유율 14.59%로 미국(21.15%)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23년 4위이던 한국은 작년 6위로 두 계단 하락했다. 최근엔 국가별 규제 정책에 따라 여러 인종을 포함한 다국가 임상시험을 선호하는 추세다. 아시아인 대상 임상시험 시장에선 한국 일본 중국 등이 경쟁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전공의들이 대학병원에서 이탈한 것은 국내 임상시험의 경쟁력을 악화한 결정타가 됐다.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를 관리하고 관련 데이터 등을 수집하는 것은 대부분 전공의의 몫이었다. 전공의들이 떠난 뒤 대학병원에 남은 교수들은 외래근무, 야간 병동 당직 등의 업무를 모두 책임지고 있어서 부수 업무인 임상연구를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 이탈 후 일부 병원에서 한동안 신규 환자를 받지 않아 신약 임상 환자 등록이 중단된 것도 순위가 하락한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글로벌 제약사가 한국을 ‘불확실성이 큰 국가’로 분류하기 시작하면 후속 임상시험 등을 유치하는 게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정석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회장은 “의정 갈등 사태를 조속히 종식하고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임상시험수탁기관(CRO)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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