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에너지의 탈정치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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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탈원전이 촉발한 에너지 정치화,
역풍 불며 신·재생 산업 위축까지 이어져
에너지 안보·탄소중립이란 큰 목표 아래,
모든 에너지원 경쟁하고 상호 보완해야

  • 등록 2025-05-01 오전 5:00:00

    수정 2025-05-01 오전 5:00:00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에너지는 정치적 논쟁에서 제외하고, 장기적인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마 빌바오 레온 세계원자력협회(WMA)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 참석차 한국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탄탄한 원자력 공급망을 토대로 많은 나라를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반대의 정책을 펼치며 불안감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사마 빌바오 레온 세계원자력협회(WNA) 사무총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원자력연차대회·국제원자력산업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앞선 8년은 에너지가 국내 정치 한복판에 선 유례없는 시기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과 함께 탈핵 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전을 배제한 급진적 에너지 전환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전력망과 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태양광·풍력·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확충 계획은 속도가 더뎠고, 계획했던 원전 건설 계획이 중단되며 원전산업 생태계만 큰 타격을 입었다.

이는 거센 역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5년 후 윤석열 정부가 ‘원전 최강대국’이란 구호를 내걸고 집권하며 탈원전 정책은 백지화됐다. 에너지의 정쟁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 정부의 치부를 들추는 식의 조사로 태양광·풍력 산업을 비리의 온상으로 몰아갔고 자연스레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위축됐다. 또 원전 생태계가 채 복원되기도 전에 비상계엄이란 무모한 도박으로 원전의 미래마저 다시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피폐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충분히 늘리지 못한 탈원전 정책은 결국 가스발전 비중만 높였고, 이는 2022년 국제 에너지 위기의 충격을 키웠다. 국민과 기업은 급격히 오른 에너지 요금 부담에 신음했고, 한국전력(015760)공사와 한국가스공사(036460)는 천문학적 부채를 떠안았다.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이 한창인데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핵심산업을 뒷받침할 전력공급 인프라 구축은 더디기만 하다.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5년씩 늦어졌고, 그렇다고 신·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리지도 못했다.

물론 에너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해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까진 세웠으나 그 방법론은 확립되지 않았다. 영국, 스웨덴 등 많은 나라가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계기로 기존 탈원전 계획을 철회했으나 독일·대만은 그럼에도 탈원전을 결행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아예 기후위기란 전제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논의는 어디까지나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이란 큰 목표 아래 각각의 에너지원이 비용과 안정성을 두고 경쟁하고, 상호 보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은 “에너지 자체엔 이념이 없는데 사람들이 이념을 불어 넣어서 본다”며 “각각의 에너지원에 장단점이 있는데, 이를 이념적으로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모두가 공멸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6월3일 대선에서 누가 집권하더라도 에너지의 정쟁화를 배격하고, 에너지 미래 과제 해소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탄소중립 목표 시한인 2050년은 다가오는데, AI 혁명으로 에너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스페인·포르투갈의 대정전도 남의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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