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이데일리 문승관 금융부장 정리=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윤석헌 전 원장은 2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금융산업정책은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은 독립적인 민간공적기구가 전담해야 한다”며 “정권 출범 6개월 내 개편안을 마련해 실행에 옮겨야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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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태형 기자]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2일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융산업발전과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윤 전 원장은 재임 시절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밀어붙이며 키코(KIKO), 해외금리연계 DLF 사태의 배상 절차를 이끌었다. 당시 정치권과 금융계의 반발에도 임기를 채운 그가 다시 개편론을 꺼낸 배경에 “산업과 감독의 혼재로 반복하는 구조적 실패 때문이다”고 짚었다.
그는 “금융위는 산업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감독은 독립기구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전 원장은 “감독정책과 감독집행을 금감원이 하더라도 조직 자체는 관이 아닌 민간 공적기구 형태로 바꿔야 한다”며 “한국은행이 정권에 휘둘리지 않듯, 금융감독도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해야만 시장 신뢰를 얻는다”고 했다.
그는 또 디지털 금융 시대에 맞는 감독체계로 ‘쌍봉형’을 제시했다. 쌍봉형은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를 분리해 각각 독립기관이 맡는 모델이다. 윤 전 원장은 “은행의 주요 영업이 소매 금융으로 재편한 만큼, 소비자 보호에 특화된 감독기구가 필요하다”며 “영국 금융감독청(FCA)처럼 전담 조직을 만드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책임소재 혼란은 금융안정협의회 등 상위조정기구를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위원회의 정책 신뢰도와 리더십 부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윤 전 원장은 “정권마다 금융정책을 바꾸니 금융사가 로비할 틈도 생기고 책임 소재도 애매해진다”며 “가계부채 관리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총량관리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IMF(국제통화기금)가 권고한 GDP(국내총생산) 대비 80% 수준을 초과하면 시스템 위험이 커지므로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나서서 정책금융도 총량 관리에 포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청년층과 서민금융을 둘러싼 정책 혼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청년 금융은 산업도, 감독도 아닌 재정정책이다”며 “정부가 책임질 몫을 금융사에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주거지원 대출을 도입하면 “청년층 주거 부담 완화와 출산율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에 대해서는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며 “혁신을 이유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핀테크나 빅테크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기존 금융회사와 똑같은 감독 규율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새 정부와 트럼프 시대, 한국 금융은 어디로.
△국제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한국 금융은 리스크 관리와 중개기능 회복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천수답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다. 디지털 금융의 부상 속에서 전통 금융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산업과 감독을 한 기관이 맡으면 책임이 모호해진다. 소비자 피해는 반복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금융산업정책은 금융위가, 감독은 독립된 민간공적기구가 맡아야 한다. 또 쌍봉형 체계를 도입해 건전성과 소비자보호를 분리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엔 행위규제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금융안정협의회 등 조정기구를 통해 이중구조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또 금감원을 민간 공적기구로 전환해 정치로부터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 금융위는 산업만 담당해야 한다. 금융위원장은 관료 출신이 아닌 외부 전문가가 맡고, 금감원 내부는 정년 연장 등으로 전문성 중심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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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태형 기자]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2일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융산업발전과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가계부채 문제의 해법은.
△일관된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총량관리 원칙 아래에서 DSR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금융까지 포함해 가계부채를 줄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정부가 정책 신호를 명확히 하고 룰을 자주 바꾸지 말아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으면 금융회사의 로비 대상으로 변질되고 정책 효과도 사라진다. IMF도 가계부채의 GDP 대비 80% 기준을 제시한 만큼 이를 초과하지 않도록 장기적인 로드맵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출산장려형 주거지원대출(출주대)도 제안했다.
△기존 주담대는 청년과 저소득층에게 지나치게 부담스럽다. 출주대는 출산을 조건으로 정부가 직접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금융사는 실행만 맡는 구조다. 예를 들어 금리는 제로에 가깝게 낮추고 만기는 30년 이상으로 유연하게 설정한다. 대출자는 초기 부담을 덜 수 있고, 정부는 출산율 제고라는 사회적 편익을 추구하는 셈이다. 일부 부실은 세금으로 감당하되, 그 이상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노리는 정책금융이다. 출주대는 하나의 대출이지만 출산율 제고·가계부채 경감·부동산 편중 해소라는 세 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 대출 부담이 낮아지면 소비가 살아나고, 자금이 부동산이 아닌 금융자산으로 이동하면서 구조 전환의 계기가 된다. 대출 상환 실적은 신용 이력으로 남아 청년의 금융 접근성도 높아질 수도 있다.
-서민·청년 금융 문제에 대한 정부 역할은 어디까지.
△청년 금융은 금융사나 감독 당국의 몫이 아니다.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금융사가 할 일을 넘겨받아선 안 된다. 청년은 미래 고객이고, 서민도 현재의 중요한 금융 수요자다. 하지만 과도한 대출을 유도하면 오히려 금융취약계층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구조를 명확히 하고 금융사는 자율적으로 보완 역할을 하게 해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에 대해 어떻게 보나.
△동일기능에는 동일규제가 따라야 한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예외일 수 없다. 기존 금융사와 동일한 기준으로 감독해야 불공정 경쟁을 막을 수 있다. 기술혁신을 이유로 금융 리스크 관리 원칙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만큼 규제의 사각지대에 방치하면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법적 지위, 자금세탁 방지, 고객 자산 보호 등 최소한의 규율은 반드시 정비해야 한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예외일 수 없다. 기존 금융사와 동일한 기준으로 감독해야 불공정 경쟁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