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대폭 낮추면서 ‘0%대 성장’을 공식화했다. 장기화하는 내수 위축, 미국발 관세 전쟁이 경제에 치명타가 된다고 본 것이다. 긴급 처방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지만 경기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은은 어제 1.5%였던 성장률 전망을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자 조정을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은은 대미 관세 협상이 원만히 진행돼 관세율이 상당 폭 인하돼도 성장률은 0.9%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전망도 1.6%로 낮췄는데, 성장률이 2년 연속 2%에 못 미치는 건 1954년 통계 작성 이후 한 번도 없던 일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이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2.5%로 내렸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소비심리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고,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은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금리를 더 급히 내리다간 집값이 불안해지고, 가계부채만 늘어날 수 있다.
통화정책이 벽에 부딪쳤을 때엔 재정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이달 초 영남 산불 대응 등을 위해 13조8000억 원의 1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여기에 대선 승리를 전제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0조 원 이상,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30조 원의 2차 추경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세수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추경의 규모를 늘리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한된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한계선상의 자영업자들에게 수백만 원씩 예산을 나눠주는 건 민생 지원 효과가 있더라도 성장률 제고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금난으로 멈춰 선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부문 지원이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2차전지를 지원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일도 미룰 수 없다. 한국 경제가 0%대 성장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여부가 다음 주 출범할 새 정부의 판단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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