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후보는 한결같이 자기만이 대화와 협치를 복원할, 통합의 정치를 구현할 적임자라고 강조하며 권력 구조와 선거제 개편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 몇 마디 외엔 상대에 대한 일방 공세로 일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상대를 절멸시키려는 가장 극단적 형태가 비상계엄”이라며 불법 계엄과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를 역설했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입법 행정 사법 삼권 장악 시도야말로 방탄독재 괴물독재의 신호탄”이라고 맞받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두 거대 정당을 ‘비상식’과 ‘반원칙’ 세력이라며 싸잡아 비판했다.
각 후보는 상대의 해명을 요구받으면 ‘그러는 당신은 어떠냐’는 회피성 비방이나 말꼬리 잡기로 맞섰고, 아예 해명 기회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재명 후보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파면에 대한 김 후보의 모호한 태도를 문제 삼으며 “김 후보는 윤석열의 아바타다. 김 후보가 당선되면 상왕 내란수괴가 귀환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는 부패와 부정, 비리 범죄의 우두머리”라며 이 후보의 수많은 재판 혐의를 일일이 열거하고 주변 인물들의 잇따른 사망 사건까지 거론했다.
외교·안보 공약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보들은 상대를 향해 ‘친O’ ‘반O’ 같은 잣대로 갈라치기에 바빴다. 이재명 후보는 “힘자랑만 하는 강경책이 능사가 아니다”고 윤석열 정부와 김 후보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고, 김 후보는 이 후보의 쌍방울 대북송금 재판을 거론하며 “한미동맹 해체를 주장하는 세력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공방 속에 주한미군 재조정이나 북-미 직거래 가능성 같은 닥쳐올 안보 환경 격변에 대한 대응책은 없었다.이번 대선의 세 차례 TV토론은 역대 최악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기대 이하였다. 유권자에게 아예 투표장에 가지 말라는 후보들의 합작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TV토론은 후보의 철학과 식견, 비전을 듣고 자질과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반감과 편견을 노골화하는 정치권의 대결, 나아가 그 근저에 강경 지지층의 팬덤 정치가 판치는 현실에서 건강한 토론이 이뤄질 리가 없다. 이대로라면 한국 정치의 장래는 여전히 어둡다. 엿새 뒤 승자가 누구일지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우리 정치의 근본적 개혁임을 새삼 일깨워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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