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그제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과의 면담에서 소형모듈원전(SMR) 산업에 대해 언급했다. 게이츠 이사장이 “SMR이 AI(인공지능)나 반도체 분야의 전력 수요 증가에 효과적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운을 떼자 “한국이야말로 SMR 강자가 될 수 있다. 우리 기업들도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고 답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게이츠 이사장은 2006년 SMR 개발사인 테라파워를 설립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의 발전 용량과 크기를 5분의 1 이하로 줄인 것이다. 넓은 부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배관과 부품 등이 용기 안에 들어 있는 일체형이라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도 작다. 한때 한국은 ‘SMR의 원조’로 통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시험용 SMR ‘SMART’ 원자로 개발에 나선 것이 1997년이다. 이 원자로는 2012년 SMR 중 세계 최초로 글로벌 규제기관의 표준설계 인가를 받았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SMR 시장은 외국 기업들의 무대다. 미국 최초로 원자력규제위원회 설계 승인을 받은 뉴스케일파워, 게이츠 이사장이 설립한 테라파워 등이 각축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한국은 일찍 SMR 연구를 시작했지만, 정부 지원과 기업 투자 부족 등으로 산업화가 더디게 진행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으로 관련 프로젝트가 대거 중단된 영향도 컸다. 지난해엔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SMR의 일종인 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개발(R&D) 예산의 90%를 삭감한 일도 있었다.
정부는 어제 2026년도 국가 R&D 계획을 밝히면서 에너지 부문에 전년보다 19% 많은 2조6000억원을 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예산을 태양광, 풍력, SMR 연구에 나눠 쓰겠다는 설명이다. SMR이 지원 대상에 포함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신재생에너지 뒤 순서로 밀릴까 우려된다. 앞서 정부는 원전보다 신재생에너지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게이츠 이사장의 주장처럼 차세대 원전은 AI 시대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우리 기업이 잘하고 있다는 칭찬도 좋지만, SMR을 선도기술로 키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