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사실상 모든 교역국에 매긴 상호관세에 대해 미 법원이 ‘무효’라며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법원 판결에도 세계 무역 질서를 재편하려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1기 ‘관세 전쟁’의 설계자로 꼽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29일 열린 ‘2025 동아국제금융포럼’ 기조강연을 통해 “판결이 유지되더라도 관세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과거의 자유무역 시스템을 다시 볼 생각은 말라”고 단언했다.
미 연방국제통상법원은 28일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과세 권한을 부여했으며, 이는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대통령의 비상 권한보다 우선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행정명령을 통해 상호관세를 부과한 것이 ‘권한 남용’이라며 관세 명령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을 거라고 낙관하기는 이르다. 백악관이 “사법 쿠데타”라며 즉각 항소에 나선 데다 모든 행정 권한을 동원해 대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 또한 “대통령은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해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역법 301조 등을 언급하며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를 위해 새로운 수단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글로벌 무역시스템은 실패했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공정한 무역 구조로 미국의 부(富)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중산층이 몰락했다”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인식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 기조에 깊이 깔려 있는 이상, 미국의 관세·비관세 공세는 한국의 무역을 전방위적이고 지속적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철강·알루미늄, 자동차·부품에 매겨진 품목별 관세만 하더라도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반도체, 의약품 등에 이어 스마트폰에도 최소 25%의 품목별 관세를 예고했다. 우리 주력 수출품이 품목별 관세에 막히는 것이 상호관세보다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글로벌 무역 질서에 대한 ‘새판 짜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종합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수출 한국’의 위상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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