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행의 전격적인 헌법재판관 인사권 행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으로 순조롭게 전환하나 싶던 정국에 만만치 않은 정치적 파장을 낳고 있다. 한 대행은 이번에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각각 반발하는 마 재판관과 새 재판관 2인에 대한 인사권을 동시에 행사함으로써 정치적 균형의 모양새는 물론이고 헌재의 9인 체제 완성이라는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전례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도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헌재소장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 대행은 작년 말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 3명에 대해 “여야가 합의할 때까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했다가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 당했다. 국회 몫 재판관에 대한 형식적 ‘임명’마저 거부하더니 이번에는 대통령 몫 재판관 2인에 대한 적극적 ‘지명’ 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더욱 의아한 것은 한 대행이 지명한 이 법제처장이 윤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와 연수원 동기, 검사 동료로서 윤 전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 역할을 했던 최측근 인사라는 점이다. 12·3 비상계엄 다음 날엔 이른바 ‘안가 회동’에 참석해 민주당으로부터 ‘내란 공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처럼 논란이 많은 인물을 지명한 한 대행의 권한 행사를 두고 일각에서 향후 자신의 행보 등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한 대행 측은 대통령 직무정지 때는 권한대행으로서 국정의 현상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권한 행사에 그쳐야 하지만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선 그 범위를 확대해 실질적 대통령 권한 행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 직무정지(사고)와 파면(궐위) 사이에서 크게 달라질 수는 없다. 법조계에서도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에 대해 ‘직무범위를 넘어선 위헌’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대행의 인사권이 관철되면 헌재의 진보·중도·보수 재판관 구성 비율이 바뀐다. 헌법 수호기관의 보혁 구도를 바꿀 중대한 결정을 선출되지 않은 권한대행이 내리는 것은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한 대행은 더는 윤석열 정부의 연장선에 있지 않다. 대선까지 2개월 정부 교체기의 엄정한 관리자로서 정파와 이념을 떠나 공정하고 중립적인 선거 관리에 매진해야 한다. 어떤 정치적 논란에도 거리를 둬야 할 처지에 그 당사자가 돼선 더더욱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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