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폭탄’ 대상에서 빼거나 유예해주는 품목을 보면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철저히 미국 기업의 유불리를 따져 정한다는 것이다. 중국산 제품에 146% 관세를 물리기로 했지만 아이폰 가격이 급등해 미국 소비자와 애플이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이 나오자 스마트폰을 빼버린 게 대표적이다. 애플이 생산하는 아이폰의 8할 이상을 중국에서 만드는 만큼 삼성전자보다 애플의 타격이 크다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읍소가 먹혔을 것이다.
매일 한 발씩 후퇴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늘 이런 식이다. 지난 14일 나온 자동차 부품 관세 유예 검토 발언에도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테슬라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식품은 美 관세 후퇴 없을 것
하지만 관세 폭탄의 예외 대상이 될 수 없는 품목이 있다. 식품이다. 미국은 세계적 ‘식량 강국’인 만큼 수입 식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도 미국 식품산업에 미칠 악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K웨이브’에 힘입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K푸드엔 이만한 위협이 또 없다.
동원산업이 14일 내놓은 사업군 재편안은 그래서 주목된다. 동원산업은 계열사인 동원F&B 주식을 모두 사들여 100% 자회사로 편입하고, 국내외 식품사 4개를 하나의 사업군으로 재편하기로 했다. 국내 참치 시장의 80%, 세계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는 동원산업은 사업을 재편해 미국 등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동원홈푸드와 미국 자회사 스타키스트 및 스카사 등 식품 관련 계열사를 하나의 사업군으로 묶은 이유다.
동원산업이 이렇게 사업군 재편에 나선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한국의 낮은 합계출산율이다. ‘0.7의 비극’은 방정식이 아니라 사칙연산으로만으로도 내수 시장 미래를 예측하게 해준다. 남녀 100명이 출산율 0.7을 이어가면 100년 후엔 34명으로 쪼그라든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정하고 이민 등 외부 변수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숫자다. 대한민국 인구는 5000만 명에서 100년 후 1680만 명이 된다.
한국판 네슬레도 필요해
해외 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란 얘기다. 식품 회사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K푸드 붐에 힘입어 지금은 해외 시장을 휩쓸고 있지만 25%에 달하는 관세를 이겨내는 건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내수 시장이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해외 시장마저 막히면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한 K푸드 신화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다른 길은 없다. 미국을 비롯해 해외에 더 많은 공장을 짓는 수밖에 없다. 한국은 글로벌 헤드쿼터이자 연구개발(R&D) 기지로 위상을 끌어올리면 된다. 현재 CJ제일제당의 식품 사업 매출은 절반이 해외에서 나온다. 오리온은 65%를 넘었고 농심은 4할 정도다. 대상도 지난해 30%가 넘는 매출을 해외에서 거둬들였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은 우리 식품 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세계 곳곳에 공장을 두고 부가가치를 올리며 한 단계 뛰어오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처럼 한국의 ‘네슬레’와 ‘코카콜라’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