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대선發 '고용 쇼크', 더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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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대선發 '고용 쇼크', 더는 안 된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한국에서 노동시장 관련 제도는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크게 바뀌었다.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이 불 보듯 뻔해도 유권자 표심을 쫓는 정치권은 ‘선거판 경품’처럼 대선 공약을 만들고 결국 입법화해 노동시장이 충격받는 일이 되풀이됐다. 반도체 등 국내 기업의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꼽히는 주 52시간 근무제부터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지금처럼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과정에서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과 함께 대선 슬로건으로 등장해 입법화됐다. 2017년 1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50만 개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세운 데 이어 3월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자 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원내 교섭단체 4당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논의에 불이 붙었다. 중소기업의 거센 반발 등으로 얼마간 늦춰졌지만 이듬해 2월 입법이 완료됐다. 적용 예외 업종을 대폭 감축한 상태에서 유예기간 없이 5개월 뒤부터 바로 시행하는 ‘경착륙 방식’이었다.

55세이던 법정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과정도 비슷하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2012년 베이비붐 세대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여야 공약으로 등장해 이듬해 4월 일사천리로 입법화됐다. 노동계 뜻대로 정년 연장은 2016년 시행이 강제되고 그에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하는 임금체계 개편은 권고 규정으로 놔둔 부실 입법이었다.

일련의 ‘대선발 표(票)퓰리즘’이 초래한 결과는 주지하는 바다. 상위 15%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만 정년 연장과 단축 근무 혜택을 봤을 뿐 중소기업·비정규직은 조기 퇴직 등 피해를 봤다. 기업은 인건비 증가에 내몰렸고 신규 채용이 줄면서 청년도 피해자가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법정 정년 연장으로 고령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는 0.4~1.5명 감소했다.

오는 6월 예정된 조기 대선으로 노동시장은 또 갈림길에 섰다. 정치권이 메가톤급 노동 공약을 속속 내놓고 있어서다. 어떤 방식으로 입법화하느냐에 따라 노동시장은 또다시 휘청일 수 있다. 당장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 총근로시간 단축 여부 등 세부안은 차이가 있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결국 인력 운영 효율성 등을 떨어뜨려 인건비 상승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정년 연장 등 계속고용은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국민연금 수령 시기와의 불일치로 인한 소득 절벽 문제 등과 맞물려 연내라도 도입할 태세다. 민주당은 ‘정년연장TF’를 출범하고 올해 안에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천명했고, 국민의힘도 계속고용제 도입을 추진할 방침이다.

어떤 방식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할지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현행 연공급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년만 연장하면 세대 내 격차와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이 증폭될 것이란 인식이 보수는 물론 진보 진영에도 상당히 퍼져 있다. 한은은 정년 연장보다 근로자 퇴직 직후 자발적 재고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런 방향으로 입법을 완료할 수 있느냐다. 노조과 유권자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대안을 도출할 논의 구조가 필요하다. 이달 출범한 국민연금 구조개혁 특별위원회처럼 청년 국회의원이 절반 이상 참여하는 ‘정년연장·계속고용 특별위원회’를 국회가 꾸리면 어떨까. 수혜를 보는 중장년은 물론 청년과 관세전쟁 한복판에서 분투 중인 기업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번엔 꼭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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