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복식 금메달리스트 정소영 성심여고 감독의 세 딸은 모두 대를 이어 라켓을 잡았다. 장녀 김혜정(가운데), 차녀 김소정(오른쪽), 막내 김유정(왼쪽) 모두 실업무대 입성에 성공했다. 김혜정과 김유정은 국가대표로도 활약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소영 성심여고 감독
“대를 이어 라켓을 잡은 세 딸들이 대견하다. 엄마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각자 이름을 날리지 않았나.”
정소영 성심여고 감독(58)은 세계배드민턴계의 레전드다.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혜영 성지여고 감독과 함께 여자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선수권대회, 수디르만컵(세계혼합단체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등 유수의 대회에서 메달을 쓸어담으며 2003년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정 감독에게 배드민턴은 곧 삶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고, 국제 시니어대회에 직접 출전해 코트를 누빌 정도다. 가족들도 배드민턴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정 감독은 배드민턴 선수 출신 김범식 지도자(보령시체육회)와 1993년 결혼해 슬하에 세 딸을 뒀다. 그의 딸 김혜정(27·삼성생명), 김소정(24·전 시흥시청), 김유정(22·삼성생명) 모두 대를 이어 라켓을 잡았다. 이 중 김혜정은 2016년부터, 김유정은 올해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를 누비고 있다.
정 감독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딸들이 대견하다. 딸들의 경기를 볼때마다 희로애락을 모두 느낀다. 정 감독은 2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김동문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의 취임식에서 스포츠동아와 만나 “(김)혜정이는 엄마가 배드민턴 선수다보니 자연스레 라켓을 잡았다. (김)소정이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김)유정이는 가족들 모두 배드민턴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코트에 들어서게 됐다”며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플레이스타일이 저마다 다르다. 혜정이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속도가 빠르다. 소정이는 수비적인 성향이 강하고, 유정이는 손감각과 라켓 컨트롤은 좋지만 체력과 힘은 언니들이 더 낫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혜정이와 유정이, 지난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소정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은 모두 같다”며 “세 딸이 모두 실업무대에 진출했고, 첫째와 셋째가 태극마크를 달았으니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기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며 아이들을 바라본다”고 밝혔다.
정소영 성심여고 감독은 1992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복식 금메달리스트로 2003년 BW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레전드다. 세 딸이 모두 배드민턴 선수로 활약하고 있어 대견함을 느끼면서도, 항상 걱정을 안고 산다. 정 감독은 “한때 모녀 올림픽 메달리스트 욕심도 났지만, 이젠 딸들이 성적보단 건강과 재미에 초점을 맞추며 배드민턴과 인연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정 감독의 말대로 그는 항상 딸들을 향한 걱정을 안고 산다. 특히 장녀 김혜정이 지난해 2024파리올림픽 레이스 도중 부상을 입어 올림픽 출전권을 놓친 모습을 보고 적잖게 마음이 아팠다. 김혜정은 여자복식 파트너 정나은(25·화순군청)과 함께 세계랭킹 3위까지 오르며 파리행 의지를 불태웠지만, 백하나(25)-이소희(31·이상 인천국제공항·3위) 조와 김소영(31·인천국제공항)-공희용(29·전북은행·23위) 조에 밀려 파리행 티켓을 거머쥐지 못했다.
정 감독은 “지난해 혜정이가 파리에 가지 못했을 때 너무 속상했다. 늘 혜정이에게 ‘올림픽은 하늘이 주는 기회’, ‘올림픽은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와는 차원이 다른 대회니 은퇴 전까지 한번쯤은 출전해봐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하늘이 혜정이를 살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며 “파리올림픽 이후 복식 파트너가 (공)희용이로 바뀌었고, 세계랭킹도 9위까지 올라왔다. 희용이가 공격력이 좋은 편이라 혜정이가 네트 플레이를 하면서도 덜 지치는 모습이 보여 마음이 조금 놓였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아온 스타 선수들이 딸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내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낀다”며 “사실 과거엔 ‘우리 딸들도 나처럼 올림픽 메달을 따야한다’는 생각도 많이했다.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55)과 김원호(26·삼성생명)가 파리올림픽에서 모자 메달리스트로 거듭난 걸 보고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모녀 메달리스트 생각은 크게 없다. 딸들이 성적보단 건강과 재미에 초점을 맞추며 배드민턴과 인연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웃었다.
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