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범죄 먹잇감된 실버머니
사기피해자 7명 중 1명꼴 노인
노후자산 증식 욕구 자극하며
원금보장·고수익 미끼로 유혹
디지털 역량 취약해 범죄 타깃
60대 A씨는 지난 3월 대구의 한 전시회에서 억대의 피카소 그림을 팔아 수익금을 배당해 준다는 지인의 말을 믿고 노후자금 4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전시회에 전시된 그림은 모두 복제품이었고, 돌려받은 돈은 2만원이 전부다. A씨는 "피해자 중에는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새벽까지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도 있다. 참담하다"며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노후자금을 축적한 고령층이 늘어나면서 범죄조직이 이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5억3591만원으로 집계됐다. 부동산과 퇴직금, 연금 등 평생 모은 자산이 이 시기에 집중되는 만큼 범죄조직 입장에서는 한 번의 범행으로도 큰 수익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난 것이다.
사기 범죄로 인한 재산 피해는 2024년 27조7602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해 전체 사기 피해자 중 고령층은 13.9%를 차지했는데, 이를 단순 계산해도 고령층 재산 피해는 약 3조8600억원에 달한다. 고령층의 경우 사기를 당하고도 피해를 인지하지 못해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비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는 이보다 클 수 있다.
◆'노후 불안감' 노리는 사기꾼들
고령층을 노리는 사기 범죄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고수익 투자나 원금 보장 등을 내세워 피해자가 스스로 더 많은 돈을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처럼 긴박한 상황을 연출해 돈을 가로채는 방식이다. 수법은 다르지만 노후 불안과 정보 취약성을 노린다는 점은 동일하다. 자산 증식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유형의 사기 범죄는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크고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은 노인들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원금을 보장한다' '매일 고정 수익을 지급한다'는 말은 노후 불안을 자극하는 강력한 미끼가 된다.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는 "노인들은 조금만 잘해줘도 쉽게 마음을 연다"며 "이를 노리고 '도움을 주겠다'면서 접근한 뒤 '조금만 투자하면 우리가 알아서 수익금을 나눠주겠다'며 소액 투자를 권유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고령층을 표적으로 삼은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또 다른 이유로는 범행으로 거둘 수 있는 이익이 크다는 점이 꼽힌다. 고령층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초기 투자금이 큰 경우가 많고, 수익이 발생한다고 믿으면 투자금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경향을 보인다. 투자에 대한 확신이 설 경우 가족이나 형제자매, 친구 등 주변인과 공유하면서 피해가 확산된다는 점도 고령층 사기 피해가 커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또 고령층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지 않은 탓에 사기 구조의 실상을 인지하거나, 피해 발생 후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사기 조직이 투자 참여를 제안하며 최신 정보기술 용어를 조합한 허황된 사업 비전을 제시해도 고령층은 속아 넘어간다. 특히 인공지능(AI)이나 로봇 등 최근 각광받는 신기술이 사기에 동원되면서 관련 지식이 부족한 고령층은 진위를 구별하지 못해 사기에 휘말리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자산 적은 고령자도 사기 피해
심리적으로 고립된 노인들은 가까이 있는 지인의 말을 쉽게 신뢰한다. 지인들이 "최근 몇 달간 실제로 수익을 보고 있다"고 설득하면 이에 넘어가는 식이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의 한 폰지 사기 업체 '코인업'은 비상장 코인을 상장해 단기간에 500%가량의 수익금을 내겠다며 노인들을 불러 모은 뒤 지인을 데려오면 성과보수를 주겠다고 회유했다. 이렇게 모인 노인들은 '모집책'이 돼 지하철 등에서 만난 또래 노인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함혜란 법무법인 정격 변호사는 "따지고 보면 이들도 모두 피해자지만 법정의 선고는 결코 가볍지 않다"며 "이런 다단계 금융 사기에 연루돼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자산이 많지 않은 고령층도 사기 조직의 표적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고금리 대출을 낮은 금리로 바꿔주겠다는 대환대출을 미끼로 한 보이스피싱이 단적인 사례다. 금융회사 직원을 사칭한 사기범들은 피해자에게 기존 대출 상환금이나 보증금 명목으로 돈을 송금하게 한다. 김주연 대표는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 극심한 우울감과 죄책감에 시달린 노인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며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3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뒤늦게 피해 인지…알아도 속앓이
고령층 사기 피해는 단순한 재산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활동을 통해 손실을 만회하기 어려운 데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거나 뒤늦게 인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 사실을 알아차리는 시점이 늦어질수록 계좌 지급 정지나 자금 추적이 어려워지고, 결국 피해 규모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범죄조직이 반복적으로 같은 피해자를 노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학과 교수는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자산을 축적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디지털 역량은 떨어져 범죄자 입장에서 반복 범행이 수월한 표적"이라며 "점점 복잡해지는 금융 사기 범죄에 맞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정부에서는 다중적인 보호 체계를 마련해 소외당하는 계층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자경 기자 / 문광민 기자]



![[속보] 잠실 개표소 출입 막은 ‘올다르크’ 구속영장 기각](https://pimg.mk.co.kr/news/cms/202607/21/rcv.NEWSIS.NEWSIS.20260721.NISI20260721_0021372403_R.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