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탕감, 습관 돼서 안돼…과거 정책 수혜자 걸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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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 김미루 연구위원] 지난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정부의 국민소통 행보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기관이 10명 중 1명은 빚을 못 갚을 것으로 보고 9명한테 이자를 다 받고 있는데 못 갚은 한 명을 끝까지 쫓아가서 받으면 부당이득이다. 이걸 정리해주는 게 형평성에 맞다”고 말했다. 정부는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채무를 탕감해주는 특별채무조정패키지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장기연체채권을 조정하는데 소요되는 재원 4000억원 이상을 은행권과 제2금융권 등 전 금융권이 함께 부담하라고 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내수는 팬데믹 이후의 일시적 반등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구조적 제약에 더해 2021년 말부터 고물가 대응을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겹치면서 민간 소비가 크게 둔화했다. 반면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늘어난 자영업자 대출은 매출 회복 속도를 앞지르며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작년 말부터 심화한 대내외 불확실성이 경기 하방 압력을 높이며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연체와 채무 불이행이 누적되고 있다.

정부의 채무조정 프로그램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는 코로나19 시기 정부 대응에 제기된 ‘재정의 금융화’라는 비판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정부는 방역을 이유로 소상공인의 영업 활동을 제한했지만 그에 따른 손실 중 일부를 직접적인 재정 지출이 아닌 대출, 보증, 이자 재원 등 간접적인 정책금융 방식으로 보전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장기 연체자의 채무 조정과 원금 감면 정책은 사후적 보완 조치로서 어느 정도 정책적 정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채무 탕감 정책이 어느 정도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지에 관한 체계적 분석 없이 반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2013년 도입된 국민행복기금이나 2022년에 시행한 새출발기금 역시 유사한 구조를 따랐다. 만약 같은 차주가 여러 차례에 걸쳐 채무 조정이나 신용사면 혜택을 반복적으로 받고 있다면 이는 해당 정책으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공 자원의 배분이 장기간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재명 정부에서 제시한 배드뱅크 정책부터는 동일 차주에 대한 반복 수혜를 제한하고 과거 수혜 여부에 따른 차등 적용 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행정 정보를 활용해 기존 수혜 이력을 확인하고 정책 설계의 정교함과 실행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완해야 한다.

김미루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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