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군함과 잠수함을 배치해야 한다. 희생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동맹은 있을 수 없다.”
피터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국방부) 장관은 30일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제23차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에서 동맹국을 향해 “더 이상 (안보) 무임승차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실질적인 전투력과 방위산업 역량을 스스로 갖춰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주의·거래적 동맹관을 압축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는 “국방 산업에 대해 역사적인 ‘국가 제조 역량 총동원령’을 내렸다”며 “(내년엔) 국방비 1조5000억달러라는 세기적 투자를 단행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군사적 지배력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확대될 듯
헤그세스 장관은 “우리는 (GDP 대비) 3.5% 이상 국방비라는 ‘골든 스탠더드’를 세우고 있다”며 “모든 동맹이 그에 걸맞은 결의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은 전쟁을 학문적 논의처럼 다룰 수 있는 사치를 누리고 있지 않다”며 한국을 모범 사례로 언급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5% 수준으로 늘리고 재래식 방위에 더 큰 책임을 지기로 한 결정은 (북·중·러 등의) 위협에 대한 냉정한 이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동맹과 파트너들이 그 길을 따를 때 (아시아) 역내는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호평의 배경에는 동맹국을 향한 미국 무기 구매 확대 등 강한 압박 메시지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헤그세스 장관은 “부유한 나라들의 방위를 미국이 보조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우리는 보호국(protectorates)이 아니라 파트너를 원한다”고 했다. 이후 헤그세스 장관은 일본, 호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인도와의 군사 협력 현황을 일일이 열거하며 ‘도전과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 수준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라미 김 국제전략연구소(IISS) 한국석좌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칭찬을 받으면 그 기대에 맞춰 살아야 한다”며 “한국에는 스스로를 더 많이 방어하고, 나아가 중국 견제를 포함한 역내 안보에 더 기여하라는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관하는 아시아안보회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국 국방부 장관 등이 모여 지역 안보 문제 등을 논의하는 다자 안보회의체다. 2002년부터 매년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리며 올해는 40여 개국에서 550여 명의 대표단이 참가했다. 중국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불참했다.
◇韓 핵잠수함 도입에 “도전 넘어야”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미국이 지원할 것인지를 묻자 헤그세스 장관은 “그것(핵잠)은 중요한 역량”이라며 일단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미국의 압도적인 해저전 능력을 강조하며 “잠수함 전력은 적국에 상당한 전략적 딜레마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맹국이 자국 방어와 역내 안정을 위해 비슷한 역량을 추구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매우 타당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도입의 세부 조건에 대해서는 “도전 과제가 있고 이를 넘어서려면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핵추진잠수함 건조 장소와 핵연료 농축도 협의, 잠수함에 넣을 소형 원전 형태뿐 아니라 미국 국무부와 에너지부, 의회 등 관계기관의 검토 등 쟁점이 많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전작권 전환 추진과 관련해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과 최근 이 문제를 상당 시간 논의했고 워싱턴DC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도 이 주제로 만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맹국이 더 빨리, 더 많이 통제권을 가져가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신선한 일(breath of fresh air)”이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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