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일본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 마련된 파소나 전시관 앞은 1시간30분 이상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이 회사가 바이오기업 쿠오립스와 함께 전시한 ‘미니 심장’을 보기 위한 줄이었다. 직경 약 3.5㎝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는 모습으로 관람객을 놀라게 했다. 전시장을 찾은 사토 메구미(63)는 “병든 심장을 갈아 끼울 수 있게 될 미래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로 만든 이 심장은 사와 요시키 오사카대 명예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있는 쿠오립스가 개발했다. 연구팀은 iPSC를 심장 박동을 일으키는 심근세포로 분화한 뒤 미니 심장을 만들었다. iPSC로 제조된 심장이 전시회를 통해 공개된 것은 세계 최초다. 이 심장은 배양액 내에서 스스로 박동한다. 다만 진짜 심장처럼 혈액을 내뿜지는 않는다. 쿠오립스는 실제 크기로 혈액까지 내뿜는 심장을 만들어 대체 장기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쿠오립스는 iPSC로 제조한 심장 근육 시트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만능세포 만든 日
아시아 재생의료 허브로 도약하는 일본
일본이 아시아 신재생의료 허브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2012년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기술력을 앞세워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넘보고 있다. 제도적으로도 한국보다 이른 2014년부터 신재생의료 관련 법제를 정비하며 산업을 빠르게 키우는 모습이다.
◇ “심장병으로 죽지 않는 세상 온다”
엑스포 내 ‘오사카 헬스케어관’에는 iPSC로 키운 심장근육 세포를 가공한 ‘심근 시트’가 전시됐다. 오사카대가 낳은 스타트업 쿠오립스가 지난 8일 iPSC로 제조한 의약품으로는 처음 일본 후생노동성에 제조·판매 승인을 신청한 제품이다. iPSC를 심근 세포로 키워 시트 형태로 만든 뒤 환자의 심장에 붙이는 방식이다. 아직 임상 데이터가 적은 만큼 조건부 ‘가승인’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지 관측이다.
‘만능 세포’로 불리는 iPSC는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2006년 세계 최초로 쥐에서 개발했고, 2007년에는 인간에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신재생의료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만능세포는 다양한 조직의 세포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은 신재생의료 임상 연구와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구조를 일찍부터 도입했다. 의료기관과 기업의 진입 문턱을 낮춰 다양한 기술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0~2019년 심근경색 등 허혈성 질환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20%에 달했다. 심근 시트를 개발해 2020년 세계 최초로 이식 수술까지 성공한 사와 요시키 오사카대 특임교수(쿠오립스 최고기술책임자)는 “시트가 보급되면 심장병으로 죽지 않는 세상이 도래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 줄기세포 기술로 파킨슨병 치료
일본에서는 각막 윤부줄기세포 결핍증(LSCD)을 앓는 환자의 치료가 신재생의료로 시행되고 있다. LSCD는 외부의 화학물질 및 질병으로 인해 각막의 재생을 담당하는 윤부줄기세포가 파괴되며, 서서히 시력을 잃게 되는 질환이다. 기존의 치료 방법으로는 건강한 각막 조직을 기증받아 이식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기증받을 각막 자체가 부족하고, 이식 후 면역 거부반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오사카대 의대 연구진은 세계 최초로 iPSC에서 유래한 각막 상피세포 시트를 개발해 환자 네 명에게 이식하는 시도를 시행했다. 수술 52주 차에 효능을 측정한 결과, 모든 환자의 질병 중증도가 개선됐으며 교정 원거리 시력이 향상됐다. 종양 발생, 면역학적 거부 반응 등 심각한 부작용도 생기지 않아 새로운 치료법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본은 그동안 규제로 국내에서 제동이 걸린 한국의 첨단의료재생 시술도 발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줄기세포기술을 활용한 파킨슨병 신(新)치료법이 이미 실용화됐다. 자가 지방 줄기세포의 정맥·척수강에 병행 투여하는 치료법이다. 한국 네이처셀 관계사인 바이오스타줄기세포기술연구원이 2023년 11월 후생성 승인을 받아 일본 의료기관과 손잡고 세계 최초로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줄기세포기술연구원 설립자 라정찬 원장은 “첨단재생의료법 개정으로 한국에서도 이 치료법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오현아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