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 전 세계 치매 환자 수가 현재의 3배인 1억53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신약 개발이 진행 중이나 그 속도가 더디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기존 약물을 치매 예방과 치료에 사용할 수 있을지 탐구하고 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의 벤자민 R. 언더우드 박사는 “치매를 예방하지는 못하더라도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시급하다. 이미 다른 질환에 대해 허가된 약물에서 찾을 수 있다면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고, 결정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케임브리지와 엑서터 대학교가 주도해 ‘알츠하이머병&치매: 알츠하이머 협회 저널’(Alzheimer‘s & Dementia: The Journal of the Alzheimer’s Association)에 발표한 연구를 위해 학자들은 다른 질환에 사용하는 기존 약물을 치매 위험과 연관시킨 연구들을 조사했다. 1억 30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14개 연구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 중에는 치매 사례 100만 건이 포함됐다.이들은 처방 데이터를 분석하여 치매 위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약물 몇 가지를 가려냈다. 그 중 일부에서 치매 예방 또는 치매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후보 약물은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백신이다. 백신은 A형 간염·장티푸스·A형간염과 장티푸스 결합·티프테리아 백신이다. 이는 치매의 일부 사례가 바이러스 또는 박테리아 감염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는 이론을 뒷받침 한다.
이부프로펜과 같은 항염증제(소염·진통제)도 치매 위험 감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염증은 다양한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반대로 치매 위험을 높이는 것과 연관된 약물도 있다.
일부 향정신성·고혈압·당뇨병 치료제와 항우울제(서트랄린, 에스시탈로프람 등)는 치매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액서터 대학의 일리아나 로우리다 박사는 “특정 약물이 치매 위험 변화와 연관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약물이 치매를 유발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예를 들어, 당뇨병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따라서 혈당 조절을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은 자연히 치매 위험도 높아진다. 하지만 약물로 인해 그 위험이 증가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걱정이 돼 약물을 바꾸고 싶다면 반드시 먼저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견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질환의 치료제로 승인된 약물을 용도 변경하면 치매 치료법을 찾는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임상 시험을 통해 치매 치료 효과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는 약물들의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박해식 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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