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당초 증원 계획에서 후퇴해 원래 규모인 3058명으로 확정하면서 사회 전반에서 강한 비판이 일고 있다. 의대생 복귀율이 25.9%에 불과한 상황에서 내려진 이번 결정에 대해 수험생과 학부모, 대학생, 환자단체와 시민단체까지 "의대생 특혜"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수험생 "입시 혼란" …대학생 "의대생만 특혜"
올해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은 정부의 결정에 큰 혼란에 빠졌다.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를 선택한 장모씨는 "정부가 의대생들이 전원 복귀해야 모집인원을 동결한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황당해했다. 이어 "결국 (의대 모집인원 증원시 입학한) 25학번만 운이 좋았고, 우리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셈"이라며 정부의 정책 일관성 부재와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의대를 진학을 희망하지 않는 수험생들도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최상위권 대학 이공계 학과를 목표로 하는 한모씨는 "내 성적으로 어느 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지 전년도 합격선을 보고 분석해야 하는데 의대정원 이슈로 전년도 입학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정보 없이 지원해야하는 '깜깜이 상황'"이라며 "의대 정원과 상관없이 내 계획대로 공부를 하자고 다짐해왔지만 기운이 빠지는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입시 피라미드의 최정점'으로 불리는 의대 모집인원은 다른 대학·학과 진학 희망자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다른 대학 합격을 포기하면 해당 대학의 합격선이 낮아지는 연쇄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 수험생들은 의대 모집인원 축소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종로학원이 지난 9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험생·학부모 543명 가운데 53.5%가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축소하는 데 반대했다. 또 68.3%는 "의대 모집인원이 축소될 경우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이런 발표가 의대생들에게 특혜를 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대학이 수업 거부 의대생에 대해 학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다는 논리다. 타 전공 학생들 사이에서는 '의대생 아니면 꿈도 못 꿀 특혜'라며 학교본부의 행정 처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소재 대학 경영학과 2학년 재학생 박소라 씨는 "의대 신입생들도 교양수업은 다른 학과 학생들과 함께 수강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대생에게만 출석에 대해 특별대우를 해주는 건 공정성에 어긋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강일이나 등록 마감일을 연장해주는 것을 보며 다른 학과 학생들은 심한 박탈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시민사회단체 "정부의 백기 투항" 규탄
그간 의료공백 사태로 어려움을 겪어온 환자와 시민단체들도 정부의 발표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포기한 것"이라며 "국민과 환자 앞에서 약속했던 의사인력 증원과 의료개혁의 근본적인 방향을 뒤집는 배신행위"라고 규탄했다.
이어 "국민과 환자는 의사 인력 증원과 의료 개혁을 통해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 계획을 믿고 건강보험 재정과 세금 투입에도 반대하지 않았다"며 "지난 1년 2개월 동안의 의료공백 사태에도 국민과 환자는 견디고 버티며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감수했다. 그 결과가 사실상 의대 증원 포기라니 참담하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정부가 의정 밀실 야합을 자백하고 의료계에 백기 투항한 것"이라며 "의대생들이 등록 후 수업거부라는 집단행동을 버젓이 이어가며 정부를 비웃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대 증원은 물론 국민 중심 개혁하던 의료정책 추진은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건의료노조도 "의대생 복귀도, 의대 교육 정상화도, 의료기관의 정상화도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결국 의사 집단에 무릎을 꿇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