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 김미루 연구위원] 정부는 배드뱅크를 세워 7년 이상 연체한 빚을 5000만원까지 없애줄 계획이지만 단기적 채무 구제로는 자영업 부채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부실이 누적된 자영업자에게 반복적인 감면이나 상환 유예 조치를 제공하면 시장에서 퇴출당해야 할 비효율 사업체까지 남아 있게 돼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 이는 자영업 과잉 경쟁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회생 가능성이 있는 사업체에 대한 정책 지원 여력까지 제한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영업 생태계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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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일환 기자) |
자영업 부채의 악순환을 차단하고 채무조정 정책의 반복을 줄이기 위해선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많은 장년층이 조기 퇴직 후 길어진 노후를 감당하기 위해 낮은 소득과 높은 불안정을 감당하며 자영업에 내몰리는 현실의 배경에 바로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상승하는 이 구조는 고령 근로자의 임금을 실제 생산성보다 높게 만들고 이는 기업으로 하여금 조기 퇴직이나 정년 이전 퇴출을 유도하게 한다. 그 결과 고령층의 고용 유지가 어려워지고 자영업 유입이 지속하면서 자영업 과잉이 구조화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기대수명은 크게 늘었지만 생애 주 직장에서의 은퇴 나이는 여전히 50세 전후에 머물러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생애 주 직장에서 더 오래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를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개편하고 정년 이후에도 유연한 재고용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고령층이 생계를 위해 반복적으로 자영업에 내몰리는 구조를 끊는 것이야말로 채무조정 정책의 반복을 줄이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임기가 정해진 정부는 단기 성과에 집중할 유인이 크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개선할 중장기 전략이다. 장기간 빚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 회복은 단순한 일시적 탕감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재기와 구조개혁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임금체계를 개편해 생애 주 직장에서의 근속 기간을 늘리고 정부의 효율적 투자를 통해 산업 기반과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하는 등 지속 가능한 경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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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루 KDI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