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량 개인전 'First Discovery, Paris'
독학으로 창조해낸 화폭
'퍼포먼스 오브 윈드' 등
가나 스페이스97서 전시
어디서 불어온 바람일까. 수만 개의 융털 형상이 바람결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색동저고리가 얽힌 것 같기도 하고, 춤을 추는 인디언들이 모자를 서로 맞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임미량 작가가 힘든 마음을 달래주는 바람을 강렬한 색채로 시각화한 'The Performance of wind #198'(2024)이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이 생경한 화폭은 루이비통 파리컬렉션 본사가 최근 임미량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루이비통이 소장한 작품 8점 가운데 인디언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회화 대작은 첫 작품이 프랑스 파리 라파예트백화점 내 루이비통 VIP룸에 걸려 '라파예트 시리즈'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나머지 7점도 서울, 부산, 중국 상하이 등 세계 주요 도시 루이비통 지점에 소장돼 있다.
프린트베이커리갤러리(PBG)는 임미량 작가의 개인전 'First Discovery, Paris'를 7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 스페이스97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라파예트 시리즈를 선보인 이후 파리 리샤르 갤러리에서 열린 첫 해외 개인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최근 파리 시테 레지던시에서 3개월간 체류하며 작업한 근작을 포함해 대표 연작 10여 점을 펼친다.
임 작가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청년 시절 시인을 꿈꿨지만 취직을 위해 영문학을 전공했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7년간 일하다 이후엔 두 자녀 양육에 전념했다. 그는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운 뒤 40세가 넘어 작업을 시작했는데 나이가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 현대미술 작가 500명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나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찾는 데만 집중했던 것 같다"며 "물감을 긁고 뿌리고, 먹어서 삼켜보고, 눈에 넣어 눈물로 흘려보는 퍼포먼스도 해보고 정말 안 해본 게 없었다. 안료 연구를 위해 직접 을지로 안료 공장을 다닌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임 작가의 작품은 골방에서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오로지 캔버스 앞에서 독학과 실험을 거듭했다. 긴 세월 동안 번듯한 작업실도, 전속 갤러리도 없었다. 서울 논현동의 사실상 폐허가 된 양지상가 건물에 입주해 새는 빗물을 퍼내며 10년간 작업을 이어갔을 뿐이다. 임 작가는 "한동안은 전시도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에 직접 제안서를 쓰고 작품을 혼자 옮겨가며 연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첫 개인전은 42세였던 2012년에 열었고, 주변의 제안에도 아트페어에 작품을 내놓은 적도 없었다. 그는 "작업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에 섣불리 시장에 나가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임 작가의 작품은 그의 인생처럼 역동적인 마음의 풍경을 담고 있다. 'The Performance of wind' 연작이 바람을 형상화한 작업이라면, 함께 소개되는 'Going' 연작은 작가가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날갯짓을 하는 새와 곧게 뻗어나가는 뿌리 등 자연의 형상에서 영감을 얻어 더욱 강인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한편 이번 개인전의 제목은 지난해 개인전을 열었던 리샤르 갤러리의 장뤼크 리샤르 대표가 임 작가의 작품 세계에 감탄하며 "내가 당신을 파리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했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임 작가는 내년 3월경 리샤르 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송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