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만난 양자역학[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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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전시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전시장은 나를 창의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일상에서는 얻기 어려운 영감을 주고, 익숙한 관성에서 잠시 벗어나게 한다. 영화관도 마찬가지지만, 전시장을 나설 때면 나는 뭔가 다른 세상의 내가 되어 있다. 이것이 예술이 가진 힘일 것이다. 지금 서울에서는 멋진 두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롯데뮤지엄에서는 원로 작가 이강소의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서도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두 작가의 작품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무척 흥미롭다. 그들의 동양적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양자역학적 세계관과 맞닿는 지점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강소의 최근작 ‘유령조각’을 보며 물리학자인 나는 가장 먼저 양자역학을 떠올렸다. 조각 20여 점을 천으로 덮어 전시한 작품이다. 관객은 조각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고, 천 밖으로 드러난 윤곽과 형태를 통해 그 존재를 짐작할 뿐이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처럼. 작품은 가려져 있지만, 분명 그 안에 존재한다. 관객은 천 위로 드러난 윤곽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을 상상하며, 저마다 또 다른 형상을 창조해 낸다. 이강소는 오랫동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과연 대상의 진짜 모습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왔다. 이번 전시 역시 그가 꾸준히 탐구해온 구상과 추상, 있음과 없음, 붓질과 이미지,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경계를 실험적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서도호의 전시도 동양사상과 양자역학의 세계관이 맞닿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양자물리학과 불교 사이에 아주 많은 유사성을 발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안과 밖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양자역학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제시한 ‘상보성 원리’와도 흥미로운 철학적 평행관계를 이룬다. 서도호의 작품에서 안과 밖은 대립하면서도 공존한다. 서도호에게 몸은 한곳에 있지만 기억은 여러 장소에 머문다. 서울의 집과 뉴욕의 집, 런던의 공간이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서로 포개져 존재한다. 반투명 천으로 만든 그의 집에서는 현재와 과거, 이곳과 저곳, 실제 공간과 기억의 공간이 겹쳐진다. 물리학자의 눈에는 그것이 마치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양자 중첩 상태처럼 보인다.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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