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격’을 보면서 우리 국민이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다. 6·25전쟁을 계기로 72년간 피로 맺어진 혈맹 관계인 줄 알았는데, 트럼프는 한국을 ‘최악의 침해국’ 중 하나로 지목했다. 트럼프 2기, 미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예전의 그 미국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 하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호자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상호주의에 입각해 계약을 신성시하는 문화도 미국에서 배웠다. 그러나 양국 의회의 비준까지 거쳐 발효한 지 13년이나 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트럼프의 행정명령 하나로 하루아침에 빈껍데기가 됐다. 우리는 그간 FTA로 미국과의 무역 때 평균 0.2%의 실효 관세율을 적용받았으나, 25%의 상호관세로 관세율이 단박에 25.2%로 치솟았다. 미국과 FTA를 맺은 20개국 중 최고 세율이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때부터 예고한 사안을 하나씩 실행하고 있다. 이를 보면 안보 분야에서도 우리의 가장 큰 우려가 현실화할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반복해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고 있으며, “김정은과 소통하고 있다”며 재협상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북한이 추가 핵무기 생산·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력 확대를 중단하는 대가로 북한에 제재 완화와 경제적 지원 등을 제공하는 ‘스몰 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미·북 간 직접 담판을 짓는 ‘코리아 패싱’ 우려도 있다. 우리로선 북핵을 영영 머리 위에 이고 사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트럼프가 유권자에게 내세우는 슬로건은 ‘위대한 미국’이다. 그러나 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자유 진영과 동맹국엔 전혀 위대하지 않다. 도덕도 이념도 가치도 안중에 없이, 오로지 미국 이익이라고 포장한 금전적 이익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린란드, 가자지구 사례에서 보인 패권주의적 야욕, 최우방 캐나다에 대한 조롱 등 한둘이 아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번 관세 전쟁에서 그가 가장 자주 쓴 말 중 하나가 “적보다 친구가 더 나쁘다”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촉발한 대혼란의 시간, 흡사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정도로 사고의 일대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