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기업에 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창업 2년도 안 된 중국 딥시크는 올해 1월 기존 미국 모델들의 10분의 1 이하 비용으로 인공지능(AI) 챗봇을 개발했다고 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 BYD는 지난해 전기차를 미국 테슬라보다 두 배 이상 많이 팔았고, 전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도 테슬라를 두 배 이상 앞섰다. 중국 제품은 가격은 싸지만 품질이 안 좋고 모방품이 많다는 인식을 가진 한국 소비자에게는 다소 의외의 뉴스일 것이다. 이런 기업 관련 뉴스가 일부 기업에 한정된 에피소드일까 아니면 중국 과학·공학 발전의 한 단면일까 하는 의문이 당연히 생긴다.
한 국가의 과학·공학(경제학, 정치학 등 사회과학 포함)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대표적 지표로는 과학·공학 관련 논문의 양과 질, 연구자 수와 역량, 기술의 실제 응용을 보여주는 특허 출원 수, 연구개발(R&D) 비용 등이 있다.
2022년 기준으로 과학·공학 분야 영어 논문 수에서 중국은 미국의 약 2배, 한국의 약 12배에 달하며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논문 수는 173% 증가해 양적 성장률에서도 중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논문의 질은 주로 인용 수로 평가한다. 일반적으로는 인용 수 기준 상위 1%에 속하는 논문 비율을 주요 지표로 삼는다. 인용이 많이 된 논문은 후속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간주된다. 이 기준에서 2006~2020년 중국은 1.2%를 기록해 미국(1.66%)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유럽연합(EU)과 일본을 앞섰다. 미국과 중국이 정치적으로는 갈등 관계에 있지만, 지난 10여 년간 미국 연구자들의 가장 큰 협업 상대는 중국 연구자들이었다.
과학·공학 분야 학사 학위 취득자 수에서도 중국은 2020년 기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물론 인구가 많기 때문이지만 미국의 약 2배, 한국의 약 12배에 달하는 과학·공학 분야 학사 학위자를 배출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질적 평가는 쉽지 않지만, 과학·공학 분야 저변이 확대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과학·공학 기술은 특허 취득을 통해 상용화된다. 따라서 특허 신청·취득 수는 해당 기술의 응용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특허협력조약(PCT)에 따라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신청된 특허 수에서 중국은 2022년 기준 5만8000여 건으로, 미국(약 6만9000건)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딥시크가 세계인을 놀라게 했지만, 사실 AI 관련 특허 수에서 중국은 이미 2016년부터 미국을 앞지르고 있었다. 딥시크라는 기업이 결코 우연히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과학·공학 분야 발전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R&D 지출이 있어야 한다. 2021년 기준 중국의 R&D 지출액은 미국의 80% 수준으로 거의 턱밑까지 따라왔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지출 비중도 미국보다는 낮지만 EU보다 높은 편이다. 더구나 중국의 R&D 지출액은 지난 10여 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여 이 추세라면 머지않아 세계 1위가 될 것 같다.
앞서 소개한 통계를 보면, 중국의 과학·공학 분야는 지난 20여 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저품질 모방품만을 제조한다는 인식은 더 이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만 분야별로 살펴보면 중국은 공학에 치중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의료 분야에 더 많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선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한국과 중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공학 분야 발전은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도 과학·공학 분야에서 주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선전하고 있으며, 지난 20여 년간의 발전은 괄목할 만하다.
한국이 앞으로도 질적 우위를 유지하고 독자적 산업 영역을 계속 개척해 나가려면 R&D 지출의 지속적인 확대와 과학·공학 분야 인력의 안정적인 확충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중국을 경쟁자이자 협력자로 적절히 활용한다면, 중국의 과학·공학 분야 부상은 오히려 한국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