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우리 말은 대체 누가 들어주나"…통신사들의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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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우리 말은 대체 누가 들어주나"…통신사들의 하소연

“지금 대한민국은 ‘공유지의 비극’을 맞았습니다. 글로벌 빅테크의 국내 트래픽이 급증하며 국내 인터넷망에 이른바 ‘무임승차’를 지속하고 있어서죠.”

10일 한국소통학회 주최로 열린 ‘인공지능(AI) 시대 대형 플랫폼 문제점 개선’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관계자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국내 시장에서 글로벌 빅테크의 영향력이 커지며 이른바 ‘토종 업체’들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 넷플릭스,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가 국내 인터넷망에서 차지하는 트래픽은 2023년 기준 42.6%에 달한다. 유튜브를 포함한 구글의 비중이 30.6%다. 한국방송학회 연구에 따르면 구글이 한국 통신사에 지급해야 할 망 이용료는 연간 2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하지만 구글은 요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업 간 망 이용료 분쟁을 제도가 아니라 사업자 간 개별 송사로 해결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21대 국회에서 총 7건의 망 이용료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한 참석자는 “국내 업체들과 정부가 추진한 네트워크 투자의 편익 상당수가 외국계 대형 플랫폼에 돌아가고 있다”며 “AI 시대에 이 같은 현상이 더 강화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최근 ICT업계에선 대형 디지털 플랫폼의 지배력과 이용자 피해 문제가 AI 시장으로 확대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빅테크의 일방적 요금 인상이 대표적이다. 빅테크는 지속해서 요금을 인상하는 반면 국내 업체들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요금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유튜브는 ‘프리미엄’ 요금제 가격을 지난해 12월 42.6% 올렸지만, 해외에서 제공하는 가족 결합 요금, 학생 요금제 등을 출시하지 않고 있다.

시장 자율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이날 참석자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제도적 대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U는 디지털시장법, 디지털서비스법 제정을 통해 빅테크의 독점적 지위를 견제하고 있다. 자국 업체들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도 균형 잡힌 제도 설계와 실효적 집행을 통해 선순환적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대선 국면이 가까워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은 이런 복잡한 이슈 대신 표심을 얻을 수 있는 통신비 인하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한 통신사 고위 관계자는 “매번 선거철만 되면 가계 통신비 인하를 내세우면서 통신사를 압박하고 있다”며 “빅테크와의 경쟁부터 AI 서비스까지 기업의 미래를 위한 고민은 뒷전이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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