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서 돌연 자백해 유죄로 뒤집혔다면 해당 진술의 신빙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에서 지난달 3일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제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0년 10월경 제주 서귀포시에서 트랙터를 운전하다 좌회전하던 중 왼쪽에서 직진하고 있던 피해자 B씨의 이륜차량을 트랙터 좌측 뒷바퀴로 들이받았다. B씨는 이 사고로 초래된 두부 외상에 따른 출혈로 사망했다. 검찰은 트랙터 운전 업무 종사자인 A씨가 좌회전 직전 트랙터를 일시 정지하고 육안이나 도로반사경을 통해 좌우를 살폈어야 했는데, 이 같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2022년 9월 1심은 검찰의 공소사실과 달리 A씨가 진입지점 앞에서 일시 정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도로반사경을 살폈더라도 B씨가 다가오는 것을 미리 발견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봤다.
항소심 단계에서 검찰 측이 신청해 채택된 증인이 불출석하자 법원은 ‘도주·증거 인멸 우려’를 사유로 A씨를 법정에서 구속했다. 이후 A씨의 변호인은 “교차로 진입의 우선권이 없다는 재판장의 지적을 듣고 자기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닫게 돼 과실을 모두 인정하며, 증인들에 대한 소환을 필요치 않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교통정리가 없었던 교차로에서 양보 운전 방법을 위반한 과실을 추가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A씨도 변경된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직권으로 파기한 뒤 A씨에게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A씨가 구속 이후 진술이 달라진 점에 주목해 사건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채택된 증인이 불출석하게 된 과정에 A씨가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고, 1심과 비교해 큰 사정 변경이 없는 상황에서 A씨에 대한 구속이 신중하게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구속영장에 의해 적법하게 이뤄진 만큼 재판부 재량의 한계를 현저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A씨가 한 자백의 진실성과 신빙성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대법원은 결론 내렸다. 그가 구속 전까지는 일관되게 “교차로 진입 전 일시 정지해 좌우를 살폈다”고 하다가 구속 후 돌연 유죄를 인정한 점, 변호인 의견서에서도 사실관계를 적극적으로 시인하기보다는 자신에게 교차로 진입의 우선권이 없었다는 재판부 지적을 받아들인다는 ‘법적 시인’이었다는 점 등이 근거였다.
대법원은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구속된 사람은 허위 자백을 하고서라도 자유를 얻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는 경우가 있으므로 공소사실을 부인하던 피고인이 구속 후 갑자기 자백한 사건에선 진술의 신빙성이나 증명력을 평가할 때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며 “원심은 피고인의 진술이 자백으로서 유력한 증거 가치를 갖는다고 단정할 게 아니라 석명권 행사 등으로 그 취지를 정확하게 밝혀 보고 채택돼 있던 목격 증인들에 대한 신문 절차를 거쳐 신빙성을 진지하게 살펴봤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자백의 신빙성을 따지는 기준으로는 △진술 내용이 객관적 합리성을 띠고 있는지 △자백의 동기나 이유, 자백에 이르게 된 경위가 무엇인지 △자백 외 정황 증거 증 자백과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것은 없는지 등을 제시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