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로비 경영'…삼부토건의 겉과 속 [특검 블랙리스트]

6 hours ago 2
한경 로앤비즈(Law&Biz)의 [특검 블랙리스트] 연재는 3대 특별검사의 수사의 이면을 보도합니다. 단순한 혐의 나열을 넘어, 등장하는 인물과 기업이 특검 수사에 이르게 된 배경과 그들 사이에 얽힌 관계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김건희 여사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지난달 10일 공식 출범한 이후 가장 먼저 겨냥한 기업은 삼부토건이다. 특검팀은 김 여사의 ‘계좌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와 얽힌 삼부토건 주가 조작 의혹을 핵심 수사 대상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조성옥, 정창래 전 회장, 이일준 현 회장, 관계사인 웰바이오텍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삼부토건 부회장까지 모두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줄줄이 피의자 또는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가 이뤄졌다.

한때 국내에서 손꼽히던 건설 명가 삼부토건이 창업 70여 년 만에 특별검사 수사의 중심에 선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는 삼부토건이 정·관계 전반에 걸쳐 벌여 온 로비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번 특검 수사가 결국 삼부토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1호 건설사…'로비 경영'으로 휩쓴 SOC사업

1948년 설립된 삼부토건은 1965년 국내 최초로 토목건축공사업 면허를 취득한 '1호 건설사'다. 경부·경인고속도로, 서울 지하철 1호선 등 국가 기간망 사업을 주도하며 1970~80년대 건설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0년대 초반에는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3위에 오르며 국내 대표 건설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삼부토건의 급성장 배경에는 창업자 고(故) 조정구 회장과 장남 조남욱 전 회장이 대를 이어 펼친 ‘로비 경영’이 있었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 기업 회장으로는 이례적인 정·관 출신 이력에서 비롯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창업자 조정구 회장은 1936년부터 경기도청 건축 관련 공무원으로 근무한 뒤 1948년 삼부토건을 설립했다. 이후 조 창업자는 한국국민당에 입당해 중앙위원을 지냈고,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정치권에서의 입지를 바탕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등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권을 따낸 것으로 전해진다.

가업을 이어받은 조남욱 전 회장도 부친의 경영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외자청(현 조달청)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20년간 공직에 몸담았다.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는 민정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내며 정관계에 폭넓은 인맥을 쌓고 이를 사업에 적극 활용했다. 조 전 회장은 명절마다 정관계 주요 인사들에게 선물을 돌렸고, 이를 위한 전담 명단까지 따로 관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직급에 따라 30만~40만원 상당의 한우 세트에서 멜론, 김 세트 등 선물 종류를 달리했으며, 수령자 리스트와 전달 일정도 직접 챙겼다고 알려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역시 대선 과정에서 조 전 회장으로부터 17차례나 명절 선물을 받아온 것으로 보도됐다. 윤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에 재직하던 시기엔 고급 한우 세트가 전달됐고, 지방청이나 한직을 전전하던 시기엔 비교적 저렴한 김 세트가 보내졌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조 전 회장의 철저한 인맥관리가 삼부토건이 다양한 경로로 사업 기회를 확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삼부토건이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초까지 운영했던 강남 역삼동의 르네상스호텔도 조 전 회장의 '로비 경영'에 큰 역할을 했다. 고위 공직자와 정치권 인사들이 이곳에서 비공식 회동을 자주 가지며 조 전 회장의 로비 창구이자 거점 역할을 했다는게 업계의 평가다. 현재 특검 수사를 받고 있는 윤 전 대통령과 삼부토건의 인연도 르네상스호텔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삼동 옛 르네상스호텔의 모습. 현재는 조선팰리스로 재건축됐다.

역삼동 옛 르네상스호텔의 모습. 현재는 조선팰리스로 재건축됐다.

유명무실 해외사업…국내 경기 악화 '직격탄'

하지만 정관계 로비에 기대 외형 성장에 치중했던 삼부토건은 이내 몰락의 길을 걸었다. 국내 건설사업에만 의존하고 해외 진출은 사실상 전무해 건설경기 악화 시 직격탄을 피할 수 없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삼부토건 몰락의 신호탄은 2011년 헌인마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였다. 삼부토건은 동양건설과 함께 서울 서초구 헌인마을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며 7000억원 규모의 PF를 조달했지만 분양 실패로 대규모 부실이 누적됐다. 르네상스호텔 등 자산까지 담보로 내놓으며 버티려 했으나 결국 2015년 기업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회생신청 26개월 만인 2017년 DST로봇(현 휴림로봇), 무궁화신탁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인수되며 법정관리에서 졸업했지만, 이후에도 투자자 간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며 사세는 회복되지 못했다. 한때 업계 3위였던 삼부토건은 끝없이 추락해 2023년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 71위를 기록했다.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이 낡은 판자촌인 헌인마을을 최고급 주거단지로 개발하는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던 2011년 당시의 현장 사진. /연합뉴스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이 낡은 판자촌인 헌인마을을 최고급 주거단지로 개발하는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던 2011년 당시의 현장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마케팅’…우크라 재건 테마로 반등 시도

삼부토건이 반등을 위해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18년 조남욱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정창래 전 현대건설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전문경영인 체제가 본격 도입됐다. 정 전 대표는 ESG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로비 경영’ 이미지를 벗고 체질 개선에 나섰다. 윤리경영헌장을 제정하고 ESG위원회를 출범시키는 한편 신재생에너지 및 공공기관 협력사업 확대 등을 통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국내 공공사업 중심의 수익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데다, 부채 부담과 투자자 신뢰 부족까지 겹치며 실적 반등은 요원했다. 삼부토건은 2020년부터 영업적자로 전환된 이후 실적 악화가 지속됐다. 그 결과 2023년 3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838.5%까지 치솟았고, 같은 해 상반기에는 외부 감사인으로부터 감사 의견 거절을 받아 한국거래소로부터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급기야 올해 2월에는 경영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처럼 수년간 누적된 경영 위기가 한계에 다다르던 시점, 삼부토건은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문제는 그 돌파구가 회사 본연의 사업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방향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택한 방식은 과거처럼 자신들이 가장 잘했던 방법, 곧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활용한 ‘로비 경영’으로의 회귀였다.

특검이 현재 파헤치고 있는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의 핵심은 조 전 회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영진과 주식을 보유한 가족 등이 삼부토건의 가치를 끌어올린 뒤 보유 지분을 매각하려 했다는 점이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삼부토건은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 방침과 시기를 맞춰 부산에서 열린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고, 유라시아경제인협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협약은 구체적인 이행 내용이 없는 선언 수준으로 확인됐지만, 삼부토건은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테마주’로 분류되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같은 흐름에 불을 붙인 것은 삼부토건과 윤 전 대통령 간 인연을 알고 있던 투자자들이었다. 이들은 삼부토건을 대표적인 ‘정치 테마주’로 인식하며 매수에 나섰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조 전 회장과는 10년 전부터 관계를 끊었다”고 해명했지만, 조 전 회장이 과거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처음 연결한 인물로 알려진 데다, 두 사람 모두 이 인연을 명확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김 여사 역시 지인과의 통화에서 “조남욱 회장과는 가족 같은 사이”라고 언급한 바 있어 양측 관계는 단순한 지인 수준을 넘어선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후에도 삼부토건은 정권과의 연결고리를 적극 활용했다. 2023년 5월에는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과 함께 폴란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에 참석했고, 이 소식이 알려지자 주가는 단기간에 다섯 배 이상 급등했다. 삼부토건 부회장이 대표로 있는 코스닥 상장사 웰바이오텍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하지만 실제로 삼부토건은 해외 수주 실적이 전무했고, 사업보고서상 해외법인은 ‘휴업 중’으로 기재돼 있었다.

특검은 이같은 주가 급등 시기와 대주주·경영진의 지분 매각 정황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주가 띄우기를 위한 허위 정보 제공, 미공개 정보 이용 가능성 등이 핵심 수사 대상이다. 로비 경영으로 성장한 삼부토건이 다시 같은 방식으로 반등을 꾀하는 과정에서 특검 수사의 칼끝이 향하고 있는 것이다.

몰락한 ‘로비 경영’…삼부토건의 겉과 속 [특검 블랙리스트]

“내일 삼부 체크”…특검 삼부토건 정조준

특검은 조 전 회장을 비롯한 삼부토건 전직 경영진과 김건희 여사 간 친분 관계에 주목하며 관련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검이 김 여사를 수사망에 직접 포함시키기 위해 주목하는 핵심 고리는 김 여사의 ‘계좌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다. 이 전 대표가 김 여사를 통해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에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참석한다는 미공개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는지가 주요 쟁점이다. 특검은 이 정보가 김 여사로부터 직접 전달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특검은 이 전 대표가 2023년 5월, 자신이 속한 해병대 예비역 단체 대화방에 “내일 삼부 체크”라는 메시지를 남긴 정황에 주목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삼부토건이 원 장관과 함께 폴란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에 참석한 사실이 외부에 공개되기 직전에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특검은 이 시점과 메시지의 정합성, 이후 주가 급등 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선행매매와 정보 유출 경위를 집중 수사 중이다.

특검팀은 지난 10일 삼부토건 이일준 회장과 조성옥 전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10시간 넘는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조사 직후 두 사람은 기자들을 만나 “이종호 전 대표를 전혀 모른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특검은 삼부토건이 수십 년간 정관계 로비를 기반으로 사업을 이어온 점에 주목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전망이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