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솔질하던 소년이 무너진 골드만삭스 일으켰다[이준일의 세상을 바꾼 금융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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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와인버그 이준일 경희대 회계학과 교수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와 함께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1869년 마커스 골드만이 설립했다. 1882년 사위 새뮤얼 삭스가 파트너로 합류하고, 1885년 골드만삭스로 사명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상업어음을 할인해 매매하는 중개업을 했는데, 1890년대 말 미국 최대의 상업어음 딜러로 성장했다. 그러나 1900년대 초 성장의 한계를 맞아 기업의 장기자금을 조달하는 증권 인수 및 발행 업무로 확장했다. 이때 월가를 지배하던 JP모건 등은 철도, 철강 등 거대 기업의 금융을 독점하고 있었다. 규모가 작은 골드만삭스는 이들이 주목하지 않던 소매, 유통,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은행 업무를 시작했다. 골드만삭스는 1906년 리먼브러더스와 함께 시어스로벅앤드컴퍼니의 기업공개(IPO)를 주간하며 명성을 쌓았다. 1920년대 후반에는 독자적으로 대형 딜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1920년대 미국 주식시장은 유례없는 호황기였다. 골드만삭스는 주식 발행과 중개를 넘어 직접 대중의 자금을 모아 주식에 투자하고자 1928년 거대 투자신탁 회사 골드만삭스트레이딩코퍼레이션(GSTC)을 설립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으로 주가는 폭락했고, 회사의 평판은 바닥에 떨어져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이때 회사 재건을 이끈 이가 시드니 와인버그(1891∼1969)다. 와인버그는 16세에 청소부 조수로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파트너들의 타구를 닦고, 모자를 솔질하고, 덧신의 진흙을 닦았다. 그러나 그의 기민함이 창업자 외손자인 파트너 폴 삭스의 눈에 띄었다. 삭스의 권유로 야간학교에 다니며 우편실 책임자를 거쳐 차츰 사다리를 밟아 올라갔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해군 복무 후 복귀해 증권 판매와 거래에서 역량을 보였고, 1927년 파트너가 됐다. GSTC 실패에 대해 삭스 가문은 젊은 파트너들의 손실을 대신 떠안고 한발 물러나 그에게 경영을 맡겼다. 와인버그는 무너진 평판을 재건하기 위해 대기업 경영진과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쌓는 데 사활을 걸었다. 1930년부터 사무실에서 숨질 때까지 39년간 와인버그가 이끄는 동안 골드만삭스는 가문 중심의 경영에서 능력 중심의 파트너십으로 변모했고, 미 정상급 투자은행으로 올라섰다. 와인버그는 신뢰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고객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 포드, 시어스 등 평생 35개 기업의 이사회에 참여했다. 당시 이사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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