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햇살과 눈부신 파랑...이브 생 로랑이 잠든 마조렐 정원

저학년 설계 수업 첫 시간에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작업한 내용을 설명할 때 '예뻐서요', '그냥 좋아서요'라는 말은 금지라고. 공간을 설계하는 일은 단지 기능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디자인을 도출하는 과정에서도 명확한 근거에 기반한 사고를 전개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각의 영역이 담당해야 하는 일을 간과하지는 않지만, 종종 학생들의 감각이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칼럼을 쓸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한다. 공간은 몸이 경험하는 영역인지라 직접 느끼는 것만큼 생생한 전달은 어렵다. 그래서 공간을 텍스트로 분해하여 전달하는 이 작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전달될 수 있을까 종종 고민이 되곤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장 크게 불러일으켰던 곳은 바로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이다.

보자마자 예쁘다, 아름답다, 와 같은 본능적인 감탄사를 뱉어내게 하는 이곳은 모로코의 마라케시(Marrakech)에 자리하고 있는 식물원과도 같은 정원이다. 처음 보는 선인장, 야자나무, 양치식물, 대나무 등 마라케시에서 자생 가능한 다양한 식물들이 약 8000㎡ 면적의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식물의 공간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강렬한 색상들이 식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그야말로 그림과도 같은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식물이 심어져있는 커다란 화기들부터 벤치, 분수대, 사람들이 이동하는 길의 기둥 등 정원 곳곳에 쓰인 노랑, 초록, 파랑 색상들은 인공적인 인상이 강하다 못해 형광 빛마저 감도는 흔히 쓰이지 않는 색상들이다. 모로코의 강렬한 햇살마저도 표면에 가 닿으면 깨질 것 같은 강렬함이다. 그런데 이 색상들은 식물 사이사이에서 정원을 화려하게 물들이면서도 마치 원래 식물의 것이었던 것 마냥 조화로운 경관을 연출한다.

현재 베르베르인(북아프리카의 토착민족)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정원 안쪽의 빌라는 정원에 사용된 모든 색상이 응집되어 에너지를 발산하는 거대한 조형물처럼 보인다. 새파란 외벽에 노란색과 초록색이 화려한 디테일을 형성하고 그 주위를 건물만큼 키가 큰 선인장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빌라의 창을 장식하는 화려한 창살은 건물을 둘러싼 식물의 일부처럼 느껴지며 바닥을 수놓은 화려한 모자이크 타일들은 건물을 가볍게 만들어 건물이 정원에 더욱 녹아들게 한다. 정원 곳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특히 이 빌라에서 강렬하게 내뿜어지는 새파란 색의 이름은 '마조렐 블루'이다. 이 정원의 창시자였던 자크 마조렐(Jacques Majorelle)의 이름을 붙인 색으로 다양한 색 중에서도 이 정원의 시각적 정체성을 만드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이 부실 지경이다.

프랑스의 예술가였던 자크 마조렐은 1923년부터 40여년에 걸쳐 이 정원을 조성하였다. 지금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빌라는 본래 이 화가의 작업공간으로, 1919년에 마라케시에 정착한 그는 이 지역과 식물을 깊이 사랑하여 정원을 조성하는 데에 자신의 온 힘을 다하였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정원은 방치되었고, 잊혀질 뻔 했던 이곳을 1980년대에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가 매입하여 복원을 추진하였다. 정원을 사랑한 두 사람은 이 정원이 본래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이에 정원은 현재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2008년 이브 생 로랑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유골 또한 이곳에 뿌려진 사실은 정원을 깊이 아꼈던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생생한 식물과 그보다 생생한 색상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정원의 경관은 아름답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아름답다. 눈이 크게 떠지다 못해 온몸의 감각들이 살아나는 경험이다. 그 생생함 앞에서 이유를 찾으려는 태도는 잠시 미뤄두어도 좋을 것이다. 어떠한 논리나 사고 이전에, 아름다움은 때로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