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가게 고칠 판"…3000만원 폭탄에 자영업자 '분노'

2 days ago 6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로 미술관 안내도를 살펴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관람객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로 미술관 안내도를 살펴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세종시 어진동에서 50㎡ 규모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우모 씨(55)는 내년에 뜻하지 않은 과태료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고 깜짝 놀랐다. 내년 1월부터 매장에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키오스크(사진)를 설치하지 않으면 과태료 3000만원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과태료를 피하려면 수백만원짜리 키오스크를 새로 구입해야 하는 건 물론 멀쩡한 바닥재도 뜯어내야 한다”며 “키오스크는 인건비를 줄이려고 설치하는 건데 오히려 부담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영업자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가 최근 법 적용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 플라스틱 빨대, 일회용 컵 사용 규제에 이어 졸속 행정이 자영업자 혼란을 부추긴 또 하나의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현실 모르는 졸속 행정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식당과 카페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를 의무화한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 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의 적용 시점을 연기하기로 했다.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시행령도 손질할 계획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내년 1월 28일부터 ‘바닥면적 50㎡ 이상 상시 근로자 100인 미만 사업장(카페 식당 PC방 등)’에서 키오스크를 설치할 때는 반드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제품을 써야 한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점자 블록과 이어폰 단자, 스크린 높이 조절 등의 기능이 있는 키오스크다. 키오스크 주변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조성하는 한편 시각장애인 이용을 돕기 위한 바닥재도 설치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배리어프리 제품은 700만원으로 일반 제품보다 세 배가량 비싸다. 정부 인증을 받은 배리어프리 제품은 2종에 불과하다. 멀쩡한 키오스크를 더 비싼 키오스크 제품으로 바꿔야 하는 만큼 자영업자들은 부담이 상당하다고 호소해왔다. 정부 관계자는 “50㎡ 식당이나 카페는 테이블을 4~5개 배치하는데 여기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까지 설치하면 테이블의 절반가량을 들어내야 해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 85% “시행령 몰라”

법안을 시행할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다. 시행령에 따르면 무인카페와 헬스장 등에서 많이 쓰는 자동 출입 인증시스템, 무인 라면·아이스크림 판매점 등에서 사용하는 무인판매기 등도 배리어프리 기능을 담아야 한다. 이 같은 자동 출입 인증시스템과 무인 판매기는 아직 시판도 되지 않았다.

자영업자 상당수는 시행령 내용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2월 키오스크를 도입한 식당 카페 PC방 40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85.6%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화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장애인을 위한다는 선의로 포장한 졸속 행정”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시행령을 전면 백지화하지는 않기로 했다. 장애인 권익을 향상한다는 취지는 살리기 위해서다. 소상공인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장애인 권익을 지킬 수 있는 ‘절충점’을 최대한 모색하겠다는 방침이다. 적용 대상을 줄이거나 키오스크 구입비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김익환/박상용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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