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업무용 소프트웨어 업체 SAP가 유럽 시가총액 1위 기업에 등극했다. 인공지능(AI)·클라우드를 전사적자원관리(ERP) 프로그램에 접목하는 데 성공하며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AI 기업으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상 깨고 유럽 AI 대표주자로 부상
24일(현지시간) 유럽 증시에서 SAP 주가는 전거래일보다 1.35% 오른 255.35유로에 거래를 마쳤다. 올 들어 이날까지 7.04%, 전년 대비 41.28% 상승했다.
이날 SAP 시가총액은 3153억유로(약 500조5000억원)로 올라 기존에 1위 자리를 다투던 노보노디스크(3113억유로)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2982억유로)를 제쳤다.
SAP는 IBM 엔지니어 출신인 디트마어 호프와 사업가 하소 플래트너가 공동창업한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재무·인사·고객관리 등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ERP 소프트웨어가 주력 상품이다. 2021년 기준 ‘포천2000’에 선정된 기업 중 92%가 SAP의 ERP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미국 오라클과 함께 ERP 시장의 양대 강자로 평가받는다.
최근 SAP는 자사 ERP 시스템에 AI를 접목해 유럽 AI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2020년대에는 SAP가 ERP업계의 화석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AI를 앞세운 미국 빅테크로 ERP 시장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SAP는 AI와 클라우드를 자사 ERP에 접목하는 데 성공했다. SAP가 2023년 10월 출시한 AI비서 ‘줄’이 대표 사례다. 줄은 ERP 내부 정보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AI 비서다. SAP에 따르면 줄을 통해 사용자는 정보 검색에 드는 시간을 최대 40%, 하루 1시간30분 줄일 수 있다.
클라우드 ERP 부문 역시 SAP의 성장동력으로 꼽힌다. 개별 기기에 내장된 기존 ERP를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전환하는 데 SAP가 앞장선 것이다. 2020년 SAP 전체 매출(273억유로)에서 클라우드 사업(80억유로)이 차지하는 비중은 29.55%였지만. 2024년 이 비중은 50.15%로 확대됐다.
◇노보노디스크·LVMH 제쳐
월가는 SAP의 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에 따르면 36개 투자사는 SAP 목표주가를 현재보다 11.6% 높은 285유로로 전망했다. 롭 헤일스 모닝스타 애널리스트는 “수년간 불확실한 시기를 거친 SAP가 ERP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확고히 하고, 긍정적인 성장 전망으로 투자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SAP가 유럽 증시에서 시총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 데는 기존 1위인 노보노디스크가 주춤한 영향도 컸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는 이날 전거래일보다 1.34%, 전년 대비 41.68% 내린 521.7덴마크크로네에 장을 마감했다. 노보노디스크는 2023년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내놔 유럽 증시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비만치료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신형 비만치료제 후보인 카그리세마의 임상시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
프랑스 명품기업 LVMH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사 ASML 주가도 각각 1년 만에 27.76%, 26.11% 내려앉았다. LVMH는 중국 경기 침체에 따른 아시아 시장 성장세 둔화, ASML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가 주가 하락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