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13일(현지 시간) 미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9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 연장전에서 승리한 후 환호하고 있다. 매킬로이는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저스틴 로즈(영국)와 동타를 이뤄 연장 끝에 정상에 올라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오거스타(미국) ㅣ AP 뉴시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개최된 89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35)가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11년 US오픈, 2012년 PGA챔피언십, 2014년 디오픈을 우승한 매킬로이에게 2015년부터 가장 중요한 대회는 마스터스였다.
매킬로이에게는 2011년에 마스터스를 우승할 기회가 있었다. 최종 라운드를 4타 차 선두로 출발했지만, 8오버파를 치면서 공동 15위로 마감했다. 당시에 우승했다면, 타이거 우즈처럼 21세에 마스터스를 우승할 수 있었고, 2014년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24세의 나이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타이거 우즈와 같은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2011년 마스터스 최종일 역전패는 그의 골프 인생에 가장 뼈아픈 순간이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퍼는 진 사라센, 벤 호건,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뿐이다. 진 사라센과 벤 호건은 골프가 미국, 영국과 아일랜드 사람들의 게임일 때 달성된 것이다. 게리 플레이어가 1965년에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을 때, 당분간 같은 기록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한 해 뒤인 1966년에 잭 니클라우스가 뮤어필드에서 열린 디오픈을 우승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 후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34년이 지나고 난 2000년에 타이거 우즈에 의해 나왔다.
타이거 우즈 이후 첫 그랜드슬램 달성자가 되기 위해 로리 매킬로이는 2015년부터 도전했지만, 마스터스는 매킬로이에게 주어진 10번의 기회 동안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10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라는 우리 속담도 매킬로이와 마스터스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지난해 US오픈에서 브라이슨 디샘보에게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한 직후 로리 매킬로이는 자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선언 이후에 스코티 셰플러의 영향을 받아 스타일을 바꾸었고, 그의 꾸준함은 몰라보게 향상되었다. 그 결과로 올해에 AT&T 페블비치 프로암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우승했고, 이번 대회 3라운드까지 2타 차 선두를 달릴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상대는 전년도 US오픈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디샘보였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왼쪽)가 13일(현지 시간) 미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9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정상에 올라 트로피를 들고 가족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매킬로이는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저스틴 로즈(영국)와 동타를 이뤄 연장 끝에 우승,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오거스타(미국) ㅣ AP 뉴시스
매킬로이가 1번 홀에서 더블 보기를 범하면서 디샘보와의 차이는 단번에 없어졌고, 2번 홀에서 디샘보가 버디를 기록하며 1위와 2위의 순위가 바뀌었다. 다른 스포츠 게임과 달리 골프는 조금은 지루한 경기다. 샷과 샷의 간격이 길고, 결정적인 샷도 드물게 나온다. 그러나 매킬로이와 디샘보의 쇼다운으로 진행된 최종일 전반 경기는 매 순간마다 손에 땀이 쥐어졌다.
아멘 코스 첫 번째 홀인 11번에서 디샘보가 세컨샷을 물에 빠트리며 경기가 쉽게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 드라마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저스틴 로스에게 3타 차이로 앞서던 매킬로이는 아멘 코스 마지막 홀인 13번 홀에서 투온을 시도하지 않고, 그린 앞으로 레이업 했다. 그러나 매킬로이는 어렵지 않은 어프로치 샷을 물에 빠트리며, 위험을 자초했다.
그 후 마법 같은 샷으로 스스로 우승 문을 열었다가, 퍼팅 실수로 우승 문을 닫아 버리기를 반복했다. 15번 홀에서 핀까지 201야드가 남은 상황에서 나뭇가지를 피하는 빅 드로우 샷은 세기의 샷이었지만, 바로 이어진 짧은 이글 퍼팅을 놓쳤다. 16번 홀에서도 멋진 아이언샷으로 버디 기회를 잡았지만, 퍼팅에 성공하지 못했다. 17번 홀에서 180야드 샷을 핀에 붙여 버디를 하면서, 다시 한 타 차 선두로 올라섰다. 18번 홀에서 멋진 드라이버 샷을 쳤지만, 125야드를 남겨 놓고 친 웻지 샷이 벙커로 빠졌다. 벙커샷으로 공을 핀에 붙여 우승을 확정하는 듯했지만, 다시 짧은 파 퍼팅을 놓쳤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13일(현지 시간) 미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9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정상에 올라 지난해 우승자 스코티 셰플러(미국)가 입혀 주는 ‘그린 재킷’을 입고 있다. 매킬로이는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저스틴 로즈(영국)와 동타를 이뤄 연장 끝에 우승,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오거스타(미국) ㅣAP 뉴시스
18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저스틴 로즈와 연장전에 들어갔다. 로즈가 먼저 드라이버 샷을 잘 쳤지만, 매킬로이는 더 좋은 샷을 쳤다. 로즈가 멋진 세컨샷을 쳤지만, 매킬로이는 백스핀을 곁들인 멋진 샷으로 공을 핀에 바짝 붙였다. 로즈가 버디 퍼팅에 실패한 후 매킬로이는 버디에 성공하고, 퍼터를 집어 던진 후에 그린에 엎드려서 통곡하듯이 흐느껴 울었다.
매킬로이는 마지막 라운드 직전에 라커룸에서 앙겔 카브레라를 만났고, 그는 매킬로이를 포옹하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카브레라는 14년 전 매킬로이가 우승 기회를 잡았을 때 같은 조에서 플레이한 파트너였다. 18홀 내내 2011년이 떠올랐을 매킬로이는 백 년보다 길게 느껴졌을 롤러코스터 라운드를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그렇게 마스터스는 마침내 매킬로이에게 그린자켓을 허용했고, 골프 팬은 타이거 우즈 뒤에 로리 매킬로이를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골프: 골프의 성지에서 깨달은 삶의 교훈’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