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서 중러 정상회담
환하게 웃으며 푸틴 환영한 習
러시아와 반미 전선 강화 시사
푸틴 “석유·가스 中 무한공급”
이란 전쟁발 에너지 공급난에
시베리아 가스관 확대 기대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 베이징에서 만나 ‘반서방 연대’를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중 일정을 마치고 떠난 지 불과 5일 만에 중·러 정상이 보란 듯이 밀접함을 과시했다.
특히 이란 전쟁 이후 국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면서 중·러 에너지 사업인 ‘시베리아의 힘 2’ 협상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만난 건 지난해 9월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시스트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이후 8개월 만이다.
習·푸틴, 8개월 만에 재회…‘美 견제’ 공동성명도
20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최근 몇 년간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가 이어졌다”며 “중·러는 평등한 대우, 상호 존중, 신의와 약속 준수, 협력과 상생을 기반으로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고 말했다.
또 두 정상은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을 계속 연장하는 데 동의하고 이를 심화해가기 위한 공동성명에도 서명했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현재 국제 구도는 큰 변화를 겪고 있고 세계는 ‘정글의 법칙’으로 회귀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의 가치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러는 모든 ‘일방적 괴롭힘’과 역사 퇴행 행위에 반대해야 한다”고 했다.
‘정글의 법칙’과 ‘일방적 괴롭힘’은 중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패권주의·일방주의를 비판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 직후에도 이를 문제 삼으며 ‘정글의 법칙에 반대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을 감안하면, 이번 중·러 간 공동성명은 ‘반미 전선’을 보다 공고히 하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중·러 관계가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양국 관계가 국제 관계의 모범이 됐다”고 밝혔다. 또 그는 시 주석을 ‘친애하는 친구’로 부르며 양국 관계의 견고함과 안정성에 변함이 없고 양국 간 협력을 발전시켜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러가 힘을 모아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는 “불리한 외부 요인 속에서도 우리의 협력과 경제적 관계는 여전히 긍정적”이라며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국제적 상황에서 양국의 긴밀한 협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모든 참여국의 이익 균형을 바탕으로 한 다극적 세계를 형성하는 복잡한 과정이 진행 중”이라며 “중국 친구들과 함께 각국의 주권적 발전을 존중하며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에너지 위기 속 ‘시베리아의 힘 2’ 협상 타결 기대감
이날 회담에서는 주요 의제로 중·러의 에너지 협력 사업인 ‘시베리아의 힘 2’가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이날 시 주석은 “중동과 걸프 지역 상황이 전쟁에서 평화로 전환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양국 간 에너지 공급의 안정을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도 “중국에 석유와 가스를 중단 없이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시베리아의 힘 2 사업은 러시아 야말반도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가스관 건설 사업이다. 2019년 9월 중·러가 본격적으로 논의한 뒤 2020년 8월 몽골 정부와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이 타당성조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추진됐다. 완공 시 러시아는 연간 50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수출할 수 있다.
특히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이 크게 줄어들자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힘 2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후 2024년 중·러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올랐지만 가격과 물량 등 조건이 맞지 않아 최종 협상은 결렬됐다.
이보다 앞서 러시아는 2012년 10월 중국 동북부로 이어지는 ‘시베리아의 힘 1’ 사업 건설을 공식 추진하기로 하고 2014년 중국과 30년 동안 4000억달러(약 600조원) 규모의 가스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2019년 12월 시베리아의 힘 1 건설이 완공되면서 처음 가스 공급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2024년과 상황이 많이 달라짐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시베리아의 힘 2 사업에 대한 중·러 간 협상이 크게 진척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시작되면서 중국의 주된 에너지 수입길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에너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의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왕이웨이 인민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블룸버그에 “이란 전쟁으로 중국은 에너지 수입 대체 경로를 적극 발굴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LNG 수출량을 보면 중국이 696만t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 프랑스(613만t), 일본(574만t), 벨기에(374만t), 한국(243만t) 순이었다. 러시아의 LNG 생산량은 지난해 3290만t에 달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회담을 마치고 ‘중국·러시아의 해’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귀국길에 올랐다.
[베이징 = 송광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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