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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섭 경영학 박사·성균관대 SKK GSB 교수
깨져버린 믿음, 미국 예외주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변덕으로 자본비용이 치솟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관세 부과와 재정지출 절감 계획까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면서 미국 경제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 계획을 세우지 못하거나 의사결정을 미루고 있다. 금융시장에선 주가와 금리가 동시에 급락하고 있다. 경제 성장률 예측치는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은 상승하며 투자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한다.
기업 경영과 투자 운용은 기본적으로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한 베팅이다. 기업 경영진은 고용 확대부터 연구개발비 지출, 인수합병, 신상품 생산 등의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린다.
투자자들은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을수록 자본비용, 즉 위험 보상 수익률이 높아지게 된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의 기업이나 투자 환경이 대체적으로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미국은 기업규제와 자본의 규제가 비교적 낮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편이다.
하지만 이런 미국 예외주의의 근간이 올해 들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동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경제와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미국의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자의적 관세부과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고 금융시장의 자본비용을 급등시킨다. 미래에 대한 종잡을 수 없는 불확실성은 기업과 금융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만을 높이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러한 혼란은 트럼프 특유의 협상전략의 일환에서 나왔다고 일각에서는 설명한다. 좀 더 유리한 협상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대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적 불확실성이 캐나다와 멕시코의 협상에 한정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의 전반적 성향으로 굳어지며 임기 내내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기업과 금융시장에 커다란 리스크로 다가오고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전 다짐했던 정치적 보복이 아직 시작하질 않다는 점은 더욱 큰 불확실성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발표될 경제지표엔 이러한 불확실성이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 경제 상황 역시 급격히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소비자와 기업 기대심리는 하락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상승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의 지형 변화
미국 금융시장은 높아진 불확실성을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다. 낙관론에 취해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하던 미국 주식시장은 이미 고점 대비 8% 이상 하락했다. 조정이 끝났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시장이 흔들리면 트럼프가 개입할 거라는 이른바 '트럼프 풋'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트럼프의 주가 조정 인내 폭이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이 와중에 일본은행의 금리 정상화 의지가 확인되며 일본 장기국채 금리는 지속 상승하며 달러에 대한 엔화 강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나토에 대한 트럼프의 반감이 독일의 재정 정책에 대한 근본적 태도 변화를 일으켰다. 새로 들어서는 독일정부는 국방비 지출과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을 선언했다. 유럽의 다른 주요국도 국방비 지출의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 유럽 주식시장은 방위산업을 중심으로 10% 이상 상승하며 트럼프 취임 이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중국 주요 지수 역시 반등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딥시크로 촉발된 중국 기술주들에 대한 투자심리 개선과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가 더해지면서다. 미국 예외주의의 믿음이 서서히 깨지는 것이다.
문제는 불확실성
미국 주식과 채권시장은 기업 등의 소비 심리가 악화된 것에 비해 대체적으로 완만하다고 본다. 아마도 트럼프 정부의 행동패턴 수정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 있거나 미래에 대해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미처 다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확실한 것은 경제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결국 우리나라 수출 전망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혼돈 상황도 기업과 투자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올 한해는 안전띠를 단단히 매고 변동성 높은 경기와 금융시장에 대비할 때로 본다. 불확실성 큰 상황에선 기술이나 성장주보단 확실한 현금 창출 능력이 있는 투자처로 옮겨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