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성 에이포엑스(A41)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월이다. 당시 박 대표는 홍콩에서 개최된 가상자산(암호화폐) 컨퍼런스 '컨센서스 홍콩 2025'에 연사로 참석했다. 그는 한국의 가상자산 산업을 주제로 열린 세션에서 국내 저출산 현상이 경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해당 세션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문제를 명확하게 언급한 연사였다.
약 2개월이 지나 박 대표를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장소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호복집. 1988년 문을 연 복어요릿집으로 에이포엑스 사무실 인근에 있다. 식당을 골라달라는 요청에 박 대표는 망설임 없이 이곳을 택했다.
식당에서 만난 박 대표는 가슴에 에이포엑스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컨센서스 홍콩' 무대에 연사로 섰을 때도 비슷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당시 티셔츠에는 블록체인 용어인 '에포크(Epoch)'가 적혀 있었는데, 이는 밸리데이터(검증인) 업계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2018년 논스 합류
박 대표와 룸으로 된 자리에 앉아 점심 특선 2인분을 주문했다. 복국, 복튀김, 복불고기 등 삼호복집의 대표 요리로 구성된 일종의 '세트 메뉴'다. 음식을 기다리며 박 대표에게 크립토 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는 "군 복무 시절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을 알게 됐다"며 "이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크립토 씬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 계기가 된 건 국내 블록체인 커뮤니티 '논스(Nonce)'였다. 박 대표는 통역장교로 군 복무를 했고, 문영훈·하시은 논스 공동 설립자를 군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군 복무를 계기로) 제대 직후 서울 역삼동에 있던 논스 초창기 커뮤니티에 자주 드나들었다"며 "논스가 본격적으로 사업화를 추진한 2018년 논스에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2019년까지 논스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복튀김과 복불고기가 함께 나왔다. 복불고기는 매콤했지만 자극적이지 않았고, 복어살이 풍성하게 들어간 복튀김은 알맞은 정도로 튀겨져 바삭하고 고소했다. 치자가 들어가 노란빛을 띠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국도 서빙됐다. 신선한 복어, 재첩, 채소 등으로 우려낸 국물은 시원하고 개운했다. 점심 특선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복샤브샤브도 추천 메뉴다. 블루리본은 "얇게 저민 복어 살로 버섯과 채소를 돌돌 말아 살짝 익혀 먹는 복어 샤브샤브도 인기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부암동서 '패러데이' 설립
박 대표와 복요리를 나눠 먹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2019년 논스를 나온 뒤, 통역장교 시절 만난 군 지인들과 함께 가상자산 컨설팅 기업 '패러데이(Faraday)'를 창업했다. 핵심 사업은 해외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한국 진출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박 대표는 "(패러데이는) 국내외 가상자산 벤처캐피탈(VC)의 포트폴리오사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며 "통·번역, 펀딩 지원 등 커뮤니케이션 기반의 사업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패러데이 사무실은 지인을 통해 구한 서울 종로구 부암동 언덕길의 단독 주택에 있었다. 박 대표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이곳에서 패러데이 동료들과 숙식을 함께 했다. 그는 "인근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가 두부전골 같은 음식을 요리해 먹었던 기억들이 있다"며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었지만 삶을 '컬러풀'하게 만들어준 시기"라고 말했다.
패러데이는 코로나19 확산 직후인 2021년 문을 닫았다. 팬데믹 '셧다운' 여파로 국내외 교류가 급감한 영향이 컸다. 이후 박 대표는 국내 블록체인 기업 DSRV를 거쳐 에이포엑스를 창업했다. 에이포엑스는 설립 이듬해 150억원 규모의 시드투자를 유치했다. 국내 VC 업계에 '투자 한파'가 불어닥친 2022년 거둔 성과였다.
당초 에이포엑스는 리서치 업체로 출발했으나, 2022년 투자 유치 과정에서 향후 성장성을 고려해 밸리데이터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밸리데이터는 기술력만큼 세일즈도 중요하다"며 "(가상자산 업계에서 쌓은) 국내외 네트워크를 레버리지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톱10' 밸리데이터로
그 결과, 에이포엑스는 자산 위임량 기준 글로벌 10위권 밸리데이터로 급성장했다. 현재 에이포엑스가 스테이킹을 지원하는 가상자산은 이더리움(ETH), 수이(SUI), 앱토스(APT) 등 총 16종에 이른다. 박 대표는 "투자를 유치한 2022년부터 지금까지 회사가 압축적으로 성장했다"며 "성장 속도가 빠른만큼 성장통도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부터 회사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영지식증명(ZKP) 등 신기술 개발에도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이포엑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식사가 끝났다. 박 대표와 식당을 나와 에이포엑스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공유 오피스 '드림플러스 강남' 20층으로 향했다. 드림플러스 강남의 최상층인 20층에는 미팅 등을 위한 라운지 겸 카페가 마련돼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커피를 받아 라운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박 대표는 "돌이켜보면 크립토 씬에 들어온 건 '밥벌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며 "솔직히 '여기에 인생을 걸어야겠다'는 식의 거창한 계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단 크립토 씬에서는 (구성원 대부분) 자신이 생각하는 형태의 미래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이런 자부심이) 가상자산 시장의 등락과 무관하게 크립토 씬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주된 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말 일정을 묻자, 박 대표는 "주로 아이와 백화점 문화센터에 간다"고 했다. 2022년 결혼한 박 대표는 3살 된 딸아이의 아빠다. 박 대표는 "최근 아이와 함께 듣는 건 '트니트니' 수업"이라며 "장애물도 넘고 모형 음식을 만들기도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말에 아이가 낮잠을 자면 아내와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사와 넷플릭스를 본다"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 아내와 단둘이 식사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박 대표와 가벼운 대화를 조금 더 나누다가 헤어졌다. 20층 라운지에는 박 대표를 기다리던 에이포엑스 직원이 와 있었다. 박 대표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나왔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인사를 건넨 뒤 라운지에 있는 직원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본 인터뷰는 특정 식당이나 브랜드로부터 지원이나 금전적 대가를 받지 않았으며, 상업적 의도 없이 진행됐습니다. '블루밍런치' 코너는 인터뷰이가 선호하는 단골 식당에서 격식 없는 분위기 속 자유로운 인터뷰를 담는 것을 취지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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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 블루밍비트 기자 gilson@bloomingbi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