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국내 빅테크 양대 산맥 네이버와 카카오가 벤처캐피털(VC) 자회사를 통해 실리콘밸리를 공략하고 있다. 자연스레 국내에서 실리콘밸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지 주요 VC들이 새로운 투자 전략 판을 짜고 있어 화제다. 예컨대 롤업(Roll-up·같은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을 뭉침) 전략을 펼치고자 인공지능(AI) 기반 회계·법무법인 등에 투자하는 식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기업공개(IPO)나 벤처 딜(deal) 가뭄이 계속되자 신규 먹거리 탐색에 나선 것이다. 국내 VC 업계 일각에서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국내에서도 실리콘밸리 VC식 전략을 참고할 만 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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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
7일 글로벌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실리콘밸리 VC들이 투자 전략 변화에 나섰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VC 업계 한 관계자는 “펀드를 결성하고 될성부른 스타트업에 투자해 이익을 내던 기조에서 벗어나 컴퍼니빌딩이나 롤업 전략을 펼치는 곳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컴퍼니빌딩은 유망 아이템을 발굴해 초기 운영 자금·경영 지원은 물론이고 경영 참여를 통해 성장을 돕거나 직접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실리콘밸리 최대 VC 중 하나인 제너럴 캐털리스트가 꼽힌다. 제너럴 캐털리스트가 인공지능(AI) 기반의 콜센터, 법률 서비스, 부동산 임대업 등 다양한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이곳이 업계 다른 기업 인수를 추진하는 식이다. 제너럴 캐털리스트는 롤업 전략에 7억 5000만달러(약 1조 267억원)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너럴 캐털리스트의 롤업 전략에 활용된 주요 포트폴리오 중 하나인 영국의 부동산 기술 스타트업 드웰리는 현지 임대 중개업체 3곳을 인수했다.
이 밖에도 스라이브 캐피털이 투자한 회계 플랫폼 크리트 프로페셔널 얼라이언스는 향후 2년간 미국 회계법인을 인수하는 데 5억달러(약 6845억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인수한 회사에 오픈AI에 기반한 AI 기술을 제공해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킨다는 방침이다. 또한 미국 PEF 운용사 센터브리지파트너스와 함께 회계법인 카, 릭스 앤드 잉그럼(Carr, Riggs & Ingram·CRI)에 투자한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도 있다. CRI는 올해 초 자회사 CRI 캐피탈 어드바이저스의 사명을 CRI M&A 어드바이저스로 변경했다.
현지 관계자들은 이런 전략이 본래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전략이었지만 점차 실리콘밸리 VC 사이에 확산했다고 분석했다. 이때 VC들이 전통적인 PEF 운용사와 달리 AI 혁신과 전통 산업을 통합해 효율을 꾀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AI가 포트폴리오사의 매출 증가를 이끌도록 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포화상태인 국내 VC 업계 역시 실리콘밸리 VC처럼 투자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국내 VC 업계에 펀딩 난이 심화하자 생존 위협을 받는 중소형 VC가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중소형 VC들은 대형 VC와 경쟁하기 어려운 만큼 협회가 주축이 돼 기존 빈익빈 부익부였던 출자 사업 구조를 변경하도록 하는 등 정책 개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VC 한 관계자는 “신생 VC들이 살아남으려면 실리콘밸리처럼 미래를 내다본 투자를 하는 등 변화가 필요하다”며 “특히 정부가 벤처 생태계에 유동성 공급을 약속한 만큼 또다시 기업가치가 오를 거라 예측되는데 이를 대비하는 측면에서라도 전략 개편은 필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