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과학수사부 DNA·화학분석과 인터뷰
국과수 1차 감정 뒤 남은 의문, 기소·공판서 재확인
“사건 현장에는 피해자와 피의자, 제3자의 DNA가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초동수사 단계에서 주요 흔적을 빠르게 추려낸다면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는 기소·공판 단계에서 더 촘촘한 기준으로 미세한 흔적까지 다시 살핍니다. 감정이 이뤄지는 시점과 목적이 달라 대검의 2차 감정은 기존 결과를 재확인하는 최종 검증 절차에 가깝습니다.”
대검찰청 DNA·화학분석과 박수정 연구관, 최연경 연구사, 엄태희 DNA 감정관은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만나 대검 DNA 재감정의 역할을 이같이 설명했다. 오는 10월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앞두고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은 대검 과학수사부의 DNA 감정 기능을 공소청에 둘지, 경찰·국립과학수사연구원·중수청 등으로 옮길지 검토하고 있다. 감정관들은 제도 개편 논의에서 대검의 DNA 재감정을 단순한 중복 감정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소 판단과 공소유지 단계에서 증거로 삼을 수 있는 흔적을 더 정밀하게 가려내는 절차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관은 “그 한 번의 검증으로 진범이 잡히기도 하고, 억울한 사람이 풀려나기도 한다. 우리가 못 찾으면 더 이상 없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검증이라는 심정으로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대검 재감정의 의미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는 2015년 창원시 마산 무학산 주차장 살인사건이다. 국과수 감정에서 피해자 DNA 외에 별다른 단서가 나오지 않자 경찰은 사건 당일 동선이 겹친 약초꾼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러나 대검은 피해자의 등산용품 17점을 다시 살피는 과정에서 장갑 안쪽에 남아 있던 제3의 남성 DNA를 찾아냈고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통해 진범을 특정했다. 약초꾼은 그날 밤 풀려났다. 엄 감정관은 “진범을 잡는 것만큼 무고한 사람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부인하던 범행 정황을 대검 감정이 추가로 밝혀낸 사례도 있다. 2021년 제주 전 동거녀 10대 아들 살해 사건에서는 국과수 감정에서 피해자 DNA만 확인됐던 허리띠에서 대검이 두 피의자의 DNA를 추가로 검출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에서는 피해자의 청바지에서 피고인의 Y염색체 DNA가 나오면서 검찰이 공소장을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변경했다. 같은 부계 남성이 함께 있던 성폭행 사건에서는 대검이 상염색체 DNA를 찾아내 피고인을 특정했다.
감정관들은 이런 사례들이 대검 재감정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재감정은 수사기관이나 피고인 어느 한쪽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절차가 아니라 1차 감정 뒤 남은 의문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박 연구관은 “국과수 감정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DNA가 대검에서 새로 검출되기도 하고, 1차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대검이 범행 정황을 더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경우도 있다”며 “때로는 검찰 단계에서 ‘왜 이 감정을 안 했을까’ 싶어 새로 의뢰되는 사건도 있다”고 말했다. 최 연구사는 “재감정은 한 번 더 보는 장치”라며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판단, 1차 감정 결과, 피고인의 주장까지 모두 다시 검증된다”고 했다.
“국과수는 신속 감정, 대검은 쟁점 부위 정밀 확인”
“별도 재감정기관은 형사사법 안전장치…통합 신중”
같은 DNA 감정인데도 국과수에서 확인되지 않은 흔적이 대검에서 나오는 이유에 대해 박 연구관은 “장비나 기술의 차이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형사사건 감정은 법정 증거로 쓰이는 만큼 표준화된 절차를 따라야 하고 기관마다 감정 방식이 달라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양쪽 기관 모두 국제 표준을 중시하고 인증을 받아 운영한다”며 “차이는 감정물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목적으로 접근하느냐에서 생긴다”고 말했다.
국과수와 대검의 차이는 감정이 이뤄지는 단계와 목적에서 비롯된다. 국과수는 초동수사 단계에서 다수의 감정물을 신속하게 살펴 피의자를 특정하고 추가 수사 방향을 정하는 역할을 한다. 박 연구관은 “처음부터 장갑 하나를 들고 한 달, 두 달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며 “국과수의 역할은 중요한 증거물을 빨리 확보하고 용의자를 특정해 수사가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검에는 기소 전후나 공판 단계에서 쟁점이 어느 정도 좁혀진 뒤 다시 의뢰되는 감정물이 많다. 그는 “국과수에서 안 나왔지만 꼭 다시 한 번 찾아달라는 취지로 오는 사건들이 있다”며 “그런 경우 저희는 최대한 뜯어보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본다”고 말했다.
접근 방식의 차이는 감정물을 살피는 과정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장갑 하나를 보더라도 손바닥에 그치지 않고 손가락 사이, 이음새, 손목 안쪽, 두 겹 사이의 틈까지 확인한다. 옷도 접힌 부분과 안쪽, 마찰 흔적이 남았을 가능성이 있는 지점을 다시 골라낸다. 최 연구사는 “국과수가 넓은 범위를 신속하게 본다면, 대검은 사이도 보고 안쪽도 본다”며 “어디를 채취하느냐,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밀 감정은 샘플링 단계부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사건을 시뮬레이션해보고 어디에 흔적이 남았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감정관들은 이 같은 차이를 두 기관의 우열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사 초기에는 단서를 빠르게 찾아내는 감정이 필요하고, 기소·공판 단계에서는 좁혀진 쟁점을 더 깊이 확인하는 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연구사는 “국과수도 잘해야 하고 대검도 잘해야 한다”며 “두 기관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검증하고 보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정 기능이 한 기관에 집중될 경우 이 같은 상호 검증 구조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감정관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일본 사례를 들었다. 일본에서는 사가현 경찰 과학수사연구소 직원이 2017년 6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약 7년 동안 DNA형 감정 130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한 사실이 드러나 감정 신뢰성 논란이 일었다. 감정관들에 따르면 이 사건 이후 일본 측 관계자가 한국의 DNA 감정 체계를 살펴봤고, 학회에서 한국처럼 여러 기관이 서로 검증하고 보완하는 구조가 부럽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최 연구사는 “어느 한쪽에 힘이 모이거나 유일한 기관이 하나뿐이면 그런 폐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감정관들이 DNA 재감정 기능을 국과수로 통합하는 방안에 신중해야 한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기관이 1차 감정과 재감정을 모두 맡으면 결과가 같을 때는 “같은 기관이 다시 본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결과가 다를 때는 “왜 같은 기관에서 다른 결론이 나왔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관은 “별도의 재감정기관이 있다는 것 자체가 형사사법 절차의 안전장치”라며 “돈 있는 사람은 민간기관에 감정을 의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국가기관의 재감정은 다시 한 번 다툴 기회를 주는 장치”라고 말했다.
중수청으로 옮기는 방안 역시 현재 대검 DNA 감정의 역할과 맞지 않는다고 감정관들은 봤다. 중수청이 맡게 될 부패·경제·방위사업·마약·내란·외환 등 6대 범죄는 대검 DNA 정밀감정이 주로 활용돼온 살인·성폭력·아동학대 사건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최 연구사는 “과학수사 기능만 어디론가 옮기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관마다 맡는 범죄가 전혀 다르다”며 “중수청으로 가면 현재 수행하는 정밀 DNA 감정의 상당 부분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검 DNA 감정 업무는 사건 수로는 연간 수백 건, 실제 감정 대상은 매년 수만 점에 이르지만 담당 인력은 10여 명 수준이다. 엄 감정관은 “제가 10년 차인데 막내”라며 “정밀감정은 감정관들이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연구관도 “비슷한 감정 기능이니 한곳에 합치면 된다는 식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실제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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