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지진현장 뛰는 '야전 의사'
박관태 강남베드로병원장
몽골에 복강경장비 직접 도입
하루 8건씩 집도, 손에 건염
통깁스한채 수술 이어가기도
에티오피아·아이티 등 누벼
올여름도 휴가반납후 봉사
항구없는 내륙국까지 돕게
비행기 수술실 띄우는게 꿈
터질 듯 부어오른 얼굴과 튀어나올 듯한 눈, 겨우 이어가는 거친 숨소리…. 지난 설 연휴 에티오피아에서 마주한 30대 여성 환자의 상태는 처참했다. 돈이 없어 2주일 소모품인 저렴한 카테터(혈액 투석을 위해 정맥에 삽입하는 플라스틱관)를 6개월 넘게 꽂고 지내 대정맥이 완전히 막혀버린 환자였다.
박관태 강남베드로병원 간담췌·혈관센터 원장은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스텐트(금속 그물망)를 환자의 혈관에 삽입했다. 에티오피아 역사상 최초의 대정맥 스텐트 시술이었다. 박 원장은 "의료 봉사를 하다 보면 '내가 아니면 이 사람은 오늘 죽겠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며 "절박한 생명을 살려냈을 때 밀려오는 가슴 벅참이야말로 의사로서의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국내 장기·혈관외과 분야 권위자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아산병원 임상조교수와 고려대 안암병원 장기이식센터 부소장 등을 거치며 고난도 술기와 임상 역량을 쌓았다. 그런 그를 동료들은 '야전 의사'라 부른다. 대학병원 교수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20년 넘게 가장 열악한 의료 현장을 뛰어다닌 데 대한 존경의 의미다.
그가 처음 오지로 향한 건 전공의 수료 직후인 2001년이다. 의대 시절 단짝이었던 고(故) 심재학 씨와 '전문의가 되면 함께 몽골로 봉사를 가자'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심씨는 전공의 3년 차에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내 몫까지 해달라'는 친구의 유언을 품고 박 원장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몽골 연세친선병원 외과과장으로 부임했으나 상황은 열악했다. 박 원장은 "수술실도 없는 작은 병원에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만 매일 100명이 넘었다. 대부분의 환자가 방치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몽골의 외과 치료는 개복 수술이 유일했다. 박 원장은 현지에 복강경 장비를 직접 도입하며 외과 수술 체계의 기틀을 다졌다. 그가 4년간 집도한 담낭 절제술만 5000건이 넘는다. 하루 평균 8건씩 메스를 잡느라 손에 건염이 생겼지만 그는 통깁스를 한 채 손가락 끝만 내놓고 집도를 이어갔다.
그의 야전 이력은 재난 현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다국적 의료팀에 합류했던 그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산모를 만났다. 수많은 환자를 살려낸 베테랑이었지만 분만 경험은 전무했기에 산부인과 전문의인 아내에게 국제전화로 수술법을 물어가며 생애 첫 제왕절개에 나섰다. 그는 "아내가 사고 치지 말라며 펄쩍 뛰었지만 두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라 물러설 수 없어서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을 그리면서 배를 열었다"며 "독일 의사가 마취를, 미국 의사가 보조를 맡는 등 의료진이 힘을 모은 덕분에 아이가 건강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수술을 숱하게 해봤지만 진짜 '생명'을 살렸다고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겨울 몽골 오지 마을에서 마주한 탈장 환자는 그에게 가장 아찔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장 괴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그는 조명조차 없는 게르 안 식탁에 환자를 눕히고 척추 마취만 한 채 배를 열었다. 시커멓게 변한 장에 따뜻한 물을 부어가며 간신히 혈색을 돌려놨지만, 감염 위험이 큰 환경에서 장 절제술을 감행하는 것은 시한폭탄과 같았다. 결국 장을 뱃속에 다시 밀어넣고 봉합한 뒤 큰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장이 한 번 더 썩으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박 원장은 꽁꽁 얼어붙은 광활한 호브스골 호수 위로 차를 몰았다. 그는 "언제 얼음이 깨질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가장 가까운 도립병원까지 꼬박 5시간을 내달렸다"며 "며칠 뒤 완전히 회복한 모습을 봤을 때의 감동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그는 야전 의사다. 현재 몸담고 있는 강남베드로병원에서도 주 6일 근무를 고수하며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수술대를 지킨다.
평생 수많은 생명을 살렸으나 정작 자신을 위한 휴가는 단 한 번도 못 가봤다. 오는 7월 휴가 때에도 어김없이 아프리카 의료 봉사를 떠난다. 쉼 없이 달려온 그의 꿈은 내륙 오지 깊숙한 곳까지 닿는 '비행기 수술실'이다. 박 원장은 "병원선은 해안가에 정박해야 하는 한계가 있지 않나"라며 "의료 인프라스트럭처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직접 날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비행기 수술실을 띄워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에게 마지막 열정을 쏟아붓고 싶다"면서 "체력이 허락하는 60대 초중반 무렵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웃었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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