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중재 판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취소 신청 결과가 이르면 올해 말 또는 내년에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사진)은 1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년여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서면을 냈고, 올해 1월 영국 런던에서 구술심리까지 마친 뒤 현재 후속 공방이 진행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소송가액이 6조 원을 넘는 론스타 사건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최초의 ISDS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며 배상을 청구한 데 대해 2022년 8월 청구액의 4.6%에 해당하는 약 2억 1601만달러(원 판정 2억 1650만달러에서 감액 정정)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불복해 2023년 8월 취소 신청을 제기했고, 론스타는 이보다 앞서 취소 신청을 냈다. 국제중재 판정에 대해 양 당사자 모두가 취소를 구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정 국장은 "하나의 사건을 놓고 상대방의 인용 요구에 대한 '방어'와 우리 측의 청구에 대한 ‘인용’을 동시에 주장해야 해 절차가 상당히 복잡했다. 1년여 동안 네 차례에 걸친 서면공방 절차를 거쳤고, 지난 1월 영국 런던에서 구술심리가 진행됐다"며 "우리 정부의 취소 신청이 최종 인용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ICSID 취소절차 통계에 따르면 통상 구술심리 후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평균 약 9개월이 소요된다.
현재까지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는 총 10건이다. 총 소가는 약 10조원으로 추산되지만, 로펌 선임료 등 소송 대응에 필요한 각종 법률비용을 합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특히 국제투자중재 사건에선 승패 비율에 따라 패소한 측이 상대방이 지출한 법률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는 판정이 함께 나온다. 우리 정부가 소송에서 지면 배상액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법률비용까지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산의 한계로 법률비행에 '캡'(상한)을 두는 현실을 고려할 때 소송 대응이 쉽지 않은 이유다.
반면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외국인 투자자들은 ISDS 대응에 천문학적인 법률비용을 들인다. 일례로 엘리엇 사모펀드의 경우 소송 대응에 우리 정부보다 6배가량 많은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국장은 외국인 투자자가 들이는 법률비용이 ‘대포와 기관총’이라면 우리 정부는 ‘소총’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상대방의 법률비용까지 세금으로 부담하는 건 굉장히 뼈아픈 일"이라며 "유능한 정부대리로펌을 선임하기 위한 대응 예산을 확대하는 동시에 비용 통제 강화를 통한 예산 절감 방안을 동시에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 국제법무국은 타 중앙 부처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 대응도 지원하고 있다. 현재 관여 중인 사건만 17건(소가 약 3조2000억원)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상대로 한 구글·메타의 1080억 원대 과징금 불복 소송(항소심 진행 중), 영국 방위산업 기업 블렌하임이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제기한 69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서 승소하며 성과를 냈다. 이 밖에도 넷플릭스나 구글 아시아퍼시픽의 5000억원대 법인세 납부 거부 관련 소송, 우리 정부와 독일 방산회사 티센크루프간의 2500억원대 국제중재 사건, 우리 정부가 독일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을 상대로 제기한 300억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국부 보전이 걸린 굵직한 국제 소송들이 전부 국제법무국 소관이다.
정 국장은 올해 8월 출범 2년째를 맞는 국제법무국이 "범정부 내 사내 변호사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천문학적 혈세 유출 가능성이 있는 국제중재 사건은 적시에 대응해야 실기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사건 초기 단계부터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및 공기업 등이 적극적으로 정보나 자료를 공유해줘야 정밀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중재 회의인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A) 총회 유치전에 나섰으나 석패했다.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국제중재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넓히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정 국장은 주장했다. 그는 "대형 국제중재 사건 심리가 개최되는 나라에서 창출되는 부가적인 경제 효과는 2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며 "서울에서 더 많은 중재 심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과 로펌들의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