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서 용접 일을 맡은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시간당 넓은 면적을 불량 없이 용접해 블록을 제작하는 반면, 한 명은 작업량이 절반 수준에 그치고 불량이 많아 재작업하기 일쑤다. 이들은 용접이라는 동일노동을 하고 있으나, 노동의 가치는 다르다. 또 다른 편에서는 도장공이 일을 하고 있다. 용접공과 도장공의 업무는 동일노동은 아니나, 경우에 따라 그 가치는 동일할 수 있다.
정부가 대선 공약대로 근로기준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같은 가치를 지닌 일을 했다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언뜻 들으면 당연한 말 같다. 그러나 이를 법제화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현실적 난제와 선결 과제가 산적해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입법화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에서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가치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에 있어 남녀간의 평등한 기회 및 대우를 보장’하려는 남녀고용평등법의 목적상 이는 남녀 근로자 간의 임금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고, 대법원도 그렇게 보았다(대법원 2003. 3. 14. 선고 2002도3883 판결, 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0다101011 판결 등).
이에 대해 노동계는 남녀간 성차별을 넘어서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공무직과 공무원 등 일반 차별 사건에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를 확대 적용하려고 시도해왔다. 대학 시간강사를 전업과 비전업으로 구분하여 시간당 강의료를 차등 지급한 사안에서 남녀간 임금 차등이 아님에도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를 적용한 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5두46321 판결을 인용하며,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가 근로관계의 일반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는 성별 간의 임금차별을 규율하기 위한 규정으로 해석되며,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 위반의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므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엄격하게 해석하고, 이를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할 수 없다”는 판례가 계속되고 있다(수원지방법원 2025. 3. 27. 선고 2023가합21248 판결 등). 그러자 아예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근로기준법에 규정해 일반 원칙화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아직 대다수의 기업과 기관들이 호봉제와 같은 연공급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차가 쌓이면 자동으로 임금이 높아지는 구조이고, 직무 가치에 기반한 임금체계가 아니다. 연공급제는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정규직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향이 있어 그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또한 연공급제는 사용자의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결국 중고령자의 고용 유지에도 불리하고, 신입 채용을 꺼리게 돼 청년세대에게도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 대안으로 직무급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많았으나, 노동계 등의 반대로 논의가 공전되었을 뿐 실제 직무급제가 확산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일가지노동 동일임금이 입법화되는 경우,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대법원은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을 비롯하여 근로자의 학력·경력·근속연수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하지만(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0다101011 판결, 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19다262193 판결 등), 실제 사례에서 이러한 추상적인 기준으로 다른 종류의 노동이 동일한 가치를 가졌는지를 판단하기는 극히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법제화된다면 이를 둘러싼 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근로자가 하는 각 직무에 대한 가치 평가와 각 직무 상호간의 가치를 비교하는 작업은 결국 법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규정을 근거로 ‘직무가 유사하니 동일한 임금을 달라’는 차별 소송이 전방위적으로 제기될 경우, 직무가치에 대한 객관적 평가 시스템은커녕 소위 ‘R&R(Role and Responsibilities, 역할과 책임), ‘Job Description(직무기술서)’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많은 기업들은 ‘A와 B의 노동이 동일가치노동이 아니므로 임금 차등지급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증명하기 어려워 패소할 수도 있다.
같은 ‘사무직’이어도 분명 더 어렵고 복잡한 업무를 하고 더 무거운 책임을 맡는 사람이 있고, 같은 ‘용접공’이어도 숙련도와 경험에 따라 더 정교하고 실수 없이 작업하는 사람이 있듯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회사 근로자라면 누구나 경험치로 아는 노동의 질과 강도, 부담의 차이가 실재한다. 그러나 막상 법정에서 회사의 사정을 모르는 법관에게 이를 문서나 증언을 통해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고, 결과적으로 둘이 같은 임금을 받도록 강제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운 일을 담당한 근로자에게 오히려 역차별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이 되면 어떠한 근로자가 자신의 직무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인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제화는 매우 신중하게, 임금체계 전환과 맞물려 추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근로기준법에 일반원칙으로 들어오려면 연공급제(호봉제)의 축소 및 직무급제로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러한 직무급제로의 전환, 사용자·근로자·정부간의 충분한 소통을 통한 사회적 합의 토대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법제화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헌법 제11조가 선언한 평등권은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지 결과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은 금지되어야 하지만, 직무의 내용, 기술, 노력, 책임, 업무 성과와 숙련도 등에 다른 보상 차등은 정당한 것으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윤혜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