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성공=자신의 결핍’ 되는 한국사회
성공한 사람 끌어내리려 하면 도전 위축돼
진보 가로막고 개인-사회 전체에 해악 끼쳐
상대 성과 인정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품격
“즐거워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울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이 구절의 절반만 실천하는 것 같다. 슬픔에 빠진 사람과 함께 우는 건 어렵지 않지만, 타인의 기쁨에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는 건 어렵다. 누군가의 기쁨이나 성공이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거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정말 잘됐어, 축하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이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비교의식, 경쟁심, 그리고 시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이다.
다작을 하기로 유명한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 케빈 베이컨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자신의 실패로 보는 것은 암적으로 해로운 삶의 방식이다(Seeing somebody else‘s success as your failure is a cancerous way to live)”라고 했다. 더 나아가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시기심은 가장 위험한 사회적 독이며, 그것은 진보를 가로막고 개인과 사회의 번영을 파괴한다(Envy is the most dangerous social poison; it obstructs progress and destroys both individual and societal prosperity)”라고 했다. 이들의 말은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친다고 강조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비난과 질투로 타인의 성공을 깎아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성공한 사람을 끌어내리고 망가뜨리려는 분위기가 있다면, 결국 사회는 인재를 잃게 된다. 창의적인 도전은 위축되고, 혁신은 두려움으로 바뀐다. “너무 잘나가면 찍힌다”는 말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으려 한다. 모두가 눈치만 보며 적당한 수준에 안주할 뿐이다.이렇게 되면 사회의 쇠퇴는 필연적이다. 유능한 사람들은 성공보다는 무난한 삶을 선택하게 되고, 창업가는 새로운 도전을 주저한다. 학자는 연구보다 평판 관리에 신경 쓰고, 공직자는 책임지는 일보다 비판을 피하는 데만 급급하게 된다. 결국 국가 전체의 생산성과 혁신 역량은 멈추고, 사회는 점차 하향 평준화의 늪에 빠질 것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떨까. 상대 정당의 성과를 진심으로 인정하거나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사실상 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달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야당 민주당이 팻말을 들고 항의를 표시하는 장면이 연출됐지만, 그간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할 때 여야 의원들이 함께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반면 우리 정치권은 어떤 정책이든 상대 정당이 추진하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대결적 정치’가 일반적이다. 이런 정치는 상대 정당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 정당의 실패를 통해 반사이익을 얻으려 하면서 사회적 혼란과 정책적 불확실성만 키운다.
정치의 주권자인 국민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숙한 사회를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정치적 현상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치 현상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왜곡된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시민들이 행사하는 투표 행위의 질을 떨어뜨리고, 결국 국가 전체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감정적 지지나 반대보다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정치와 정책을 평가해야 한다.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사람보다,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이들을 더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타인의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내가 지금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더라도 뒤에서 박수를 칠 줄 아는 아량이 필요하다. 이것은 겸손을 넘어서는 사람의 성숙함과 품격의 문제다. 성공한 사람에게 “당신의 영광이 나의 기쁨입니다”라고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품격이다. 타인의 성공을 ‘우리 모두의 성공’으로 여기며 함께 기뻐하는 사회에서 창의적인 도전과 혁신도 가능하다.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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