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팍스 아메리카나는 환대 체계로 작동 우리도 남의 나라 항구 떠돌며 ‘수출강국’ 前 ICC 판사 노벨상 받던 날 ICC 제재한 美 규범 무너지면 세계는 주인 없는 동굴일 뿐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오디세우스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이타카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 평범한 욕망은 그에게 쉽사리 허락되지 않았다. 업(業)을 쌓았기 때문이다. 10년의 전쟁 뒤, 다시 10년의 방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 세계에는 낯선 이를 대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환대의 규범, ‘크세니아(xenia)’가 있었다. 여권도 비자도 없던 시절, 배를 잃고 해안에 떠밀려온 이름 없는 나그네에게도 물 한 잔과 잠자리가 주어졌다. 그 규범에는 인간이 제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자각, 그리고 최소한의 세계시민주의가 새겨져 있었다. 오늘의 주인이 내일의 나그네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규범의 정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디세우스의 고난이 신의 변덕만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는 목마라는 선물의 형식에 살육을 숨겨 환대와 신뢰를 무기로 바꿨다. 그의 귀향길은 당연히 환대를 기대할 수 없는 세계였다. 외눈박이 거인은 뱃전으로 바위를 던지고, 마녀 키르케는 부하들을 돼지로 변하게 한다. 규범을 쌓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2000여 년 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환대를 다시 불러낸다. 낯선 땅에 도착한 사람이 적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 집을 내주라는 자선이 아니라 평화롭게 찾아온 이를 적대하지 말라는 요구다. 지구는 둥글어 인간은 끝없이 서로를 피해 살 수 없고, 결국 이웃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대는 인간이 선량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언젠가 타인의 문 앞에 서게 된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지난 80년간 이어진 팍스 아메리카나는 바로 이 환대의 체계였다. 미국은 바닷길을 지키고 시장을 열었다. 세계는 달러를 쓰고 기지를 내줬으며, 미국이 만든 규칙을 자기 규칙처럼 따랐다. 미국 스스로 규칙을 어기고 이중 잣대를 들이댄 적도 있지만, 적어도 서로가 서로의 손님이자 주인이라는 의식은 있었다. 한국이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일어선 것도 그 질서 위에서였다. 지금 워싱턴은 동맹에 청구서를 보내고 우방에 관세를 매기며, 유엔도 의회도 거치지 않고 폭격을 시작한다. 그린란드를 두고 덴마크의 문을 두드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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