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시대 동굴벽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동물은 말이다.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말은 단순한 가축을 넘어 문명과 제국의 흥망을 좌우한 존재였다.
저자이자 고고학자인 윌리엄 T 테일러는 현장에서 직접 말의 뼈를 발굴하며, 치아의 마모로 재갈의 흔적을 찾아내고 척추뼈 손상을 통해 인류가 말을 타기 시작한 시점을 추정한다. 그는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최신 과학기법과 문헌 자료를 종합해 인간과 말의 관계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추적한다.
과학적으로 확인된 말의 가장 오래된 조상 '새벽말(dawn horse)'은 약 5000만년 전 숲속에서 살았다. 이후 초원으로 나와 포식자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빠른 달리기를 익혔고, 이러한 생존 본능은 훗날 인류에게 결정적인 활용 지점이 된다. 초기 인류에게 말은 동반자가 아니라 사냥감이었다. 구석기인들은 무리를 지어 말을 절벽이나 강가로 몰아 고기와 가죽을 얻었으며, 인간이 말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훨씬 뒤인 기원전 3000년 무렵의 일이다.
테일러는 마치 말을 타고 대륙을 횡단하듯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문명사 속 말의 결정적 역할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서아시아 흑해 북쪽 스텝지대의 사람들은 지속적인 교배를 통해 비교적 온순한 말을 얻어냈고, 이는 인류사의 거대한 전환점이 됐다. 굴레와 재갈의 발명으로 말을 제어할 수 있게 되자 전차가 등장했고, 스텝지대의 기마민족은 전차의 빠른 기동성을 무기로 지중해와 남아시아의 패권 질서를 뒤흔들었다. 종교적 권위로 유지되던 지역 권력 체계는 군사력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어 안장과 등자의 발명은 인간에게 전장을 지배할 압도적 우위를 부여했다.
기후변화로 말 목축에 유리한 환경을 얻은 몽골 초원의 흉노와 몽골제국은 거대한 세력을 형성해 진나라를 위협했고, 중국은 이에 대응해 만리장성을 건설하게 된다. 로마제국을 비롯한 유럽은 반대로 기후 악화와 흉노족의 이동,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파된 페스트로 인해 큰 타격을 입으며 중세의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책에는 한반도와 고구려의 역할도 등장한다. 고구려는 말을 일본에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초기 등자 기술의 혁신을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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