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
팔란티어는 2003년 ‘페이팔 마피아’ 대부로 불리는 피터 틸이 네이선 게팅스, 조 론스데일, 스티븐 코헤, 그리고 현 최고경영자(CEO) 앨릭스 카프와 함께 페이팔에서 사용한 사기 방지 프로그램을 응용해 세운 회사다. 설립 초기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 벤처캐피털인 인큐텔과 손잡고 대테러작전을 위한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고담(Gotham)’을 개발했다. 배트맨이 악당 퇴치를 위해 누볐던 고담시티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당시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대테러정책을 대폭 강화하며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 강화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었다. 팔란티어는 “프라이버시와 시민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독특한 철학을 내세우며 미 정부와 정보기관의 신뢰를 얻었다. 이후 미 국방부, 연방수사국(FBI),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모건스탠리, 에어버스, 페라리 같은 민간기업으로 고객을 확대했다. 현재 769개 기관과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2025년 1분기 매출의 55%는 정부, 45%는 민간에서 발생했다.팔란티어의 핵심 기술은 중앙화된 데이터 운영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이는 조직 내 흩어진 수많은 정형 및 비정형 데이터를 하나의 통합된 데이터 자산으로 전환해 방대한 정보를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산’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핵심 제품은 ‘고담’을 포함해 네 가지다. ‘파운드리(Foundry)’는 민간기업용 데이터 통합·분석·시각화 플랫폼으로 공급망, 금융사기, 생산관리 등에서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아폴로(Apollo)’는 고담과 파운드리의 배포·관리를 자동화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솔루션이다. 멀티클라우드와 초고도 보안 환경에서 소프트웨어를 일괄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대형 언어모델 기반 AI 플랫폼인 ‘AIP’가 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1년간 팔란티어의 주가는 AI 수요 폭증에 힘입어 6배나 급등했다. 설립 20년 만인 2023년 연간 기준으로 처음 영업이익을 낸 데 이어 2024년 매출은 28억 달러를 넘겼고, 조정 영업이익은 11억28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78% 증가했다. 월가에서는 영업이익에서 주식보상비용 등 일회성 비용을 제외한 실제 현금 창출력을 중시하며 조정 영업이익 지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올 1분기 실적은 월가를 놀라게 했다. 매출은 8억84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했고, 조정 영업이익은 73% 늘어난 3억9100만 달러를 기록하며 44%의 영업마진을 달성했다. 민간기업 부문 매출은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뛰었고, 100만 달러 이상 대형 계약은 139건, 1000만 달러 이상 초대형 계약도 31건에 달했다.
미 증시 주요 지수 편입도 주가 상승의 촉매제가 됐다. 팔란티어는 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 4개 분기 연속 일반회계(GAAP) 기준 순이익 흑자를 달성하며 2024년 9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에 편입됐다. 이어 같은 해 11월 거래소를 NYSE에서 나스닥으로 옮기면서 12월에는 나스닥100에도 편입됐다.
AI 플랫폼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도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서비스인 ‘애저(Azure)’에서도 AIP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하면서 팔란티어의 플랫폼 접근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생산 현장에 특화된 ‘워프스피드(Warp Speed)’를 출시해 기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도전에 나섰다. 또한 2024년 미 국방부와 1억8000만 달러 규모의 군용차량 ‘타이탄(TITAN)’ 개발 계약을 체결하며 사업 다각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 의존도 높고 고평가 논란도과거 팔란티어의 수익성을 우려했던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이제는 성장 스토리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팔란티어가 정부뿐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도 고객 기반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초기 구현을 저가나 무료로 제공해 새 고객을 확보한 뒤 점진적으로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는 3단계 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팔란티어의 데이터 분석 역량이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팔란티어에는 리스크 요인도 여전하다. 첫째, 정부 의존도가 아직 높다는 점이다. 미국 정치 환경에 따라 팔란티어를 키워준 국방·정보 예산이 조정될 수 있다.
둘째, 높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다. 5월 기준 팔란티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536배로, S&P500 평균(약 23∼25배)이나 정보기술(IT) 섹터 평균(약 41배), 업종 내 대형사인 세일즈포스(30∼40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현 주가는 미래 성장성을 선반영하는 것이라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AI 성장세가 꺾일 경우 조정 압력이 클 수 있다.
셋째,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규제 리스크다. 팔란티어의 사업 모델이 대량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개인정보보호법이나 데이터 사용 제한 규제가 강화된다면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와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마법의 수정구슬’, 그 다음은?
팔란티어는 분명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대테러작전을 위해 탄생한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이제는 시총 기준 글로벌 30위권 기업(미국 내 25위)으로 성장했다. AI 시대를 맞아 데이터 분석 역량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팔란티어의 기술력과 탄탄한 고객 기반은 확실한 경쟁 우위를 지닌다.
필자(최중혁)는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삼성SDI America, SK Global Development Advisors 등을 거쳐 미 실리콘밸리 소재의 사모펀드 팔로알토캐피탈(Palo Alto Capital)을 설립해 운용하고 있다. ‘트렌드를 알면 지금 사야 할 미국 주식이 보인다’ ‘2025-2027 앞으로 3년 미국 주식 트렌드’ 등의 저자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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