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OTT 전쟁, 관건은 규모와 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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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OTT 전쟁, 관건은 규모와 규제다

이달 초 개봉한 영화 ‘바이러스’는 감염되면 사랑에 빠지는 균이 퍼지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 개봉에 앞서 열린 시사회에서 한 참석자는 “바이러스를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었다. 주연 배우 배두나는 “관객이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볼 것이라는 전제하에 섬세하게 연기했다”고 답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새 영화가 개봉하면 1단계로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을까’를 평가한 뒤 2단계로 ‘이 영화를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할까’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영화관이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보편화되면서 생긴 변화다. 앞으로는 이런 흐름이 더욱 확산할 것이고 콘텐츠산업 주도권은 강력한 OTT 플랫폼을 보유한 자가 쥐게 될 것이다.

20조원 vs 1000억원

정부는 토종 OTT를 육성하기 위해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작년 말 ‘K-OTT 산업 국제 경쟁력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1조원 규모의 K콘텐츠 제작 펀드 조성, 인공지능을 접목한 OTT 가치사슬 고도화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대선 후보들도 비슷한 공약을 내놓으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백화점식 나열에 그친다.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바로 ‘규모’와 ‘규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규모의 경제’다. 디지털 플랫폼 산업에서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동한다. 한번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용자를 확보한 기업일수록 콘텐츠 제작, 마케팅, 기술 개발 등에서 효율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넷플릭스가 연간 약 20조원(2024년 기준)에 달하는 제작비를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 3억 명이 넘는 유료 가입자(2024년 말 기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반면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는 유료 가입자가 각각 520만 명, 300만 명에 불과하다.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도 연간 1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역차별 규제 해소해야

규모의 격차는 콘텐츠 제작 방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넷플릭스는 단일 플랫폼 안에서 글로벌 배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제작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타깃을 설정한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다. 국내 OTT는 지역적 제약과 재원 부족으로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확장을 염두에 두기 어려워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는 수익 구조 악화로 귀결된다. 이제 국내 OTT도 합병을 통한 덩치 키우기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규제 불균형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현재 국내 OTT는 문체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세 개 부처가 관할하고 있다. 광고 규제, 콘텐츠 등급 분류, 망 사용료, 방송법 적용 등 다양한 규제를 받는다. 반면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OTT는 콘텐츠에 대한 사전 심의를 받지 않고 망 사용료도 제대로 내지 않는다. 국내 사업자들이 당연히 부담하는 규제와 비용을 ‘국외 사업자’라는 이유로 면제받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은 속도전이자 자본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형 슈퍼 OTT’를 글로벌 경쟁 전면에 세우기 위한 시간은 많지 않다. 콘텐츠 기업의 노력과 정부의 규제 개선 모두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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