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린아이가 진열된 빵을 바라보다 순간 혀를 내밀고 빵 위에 수북한 슈가 파우더를 맛봤다. 이 놀라운 모습이 담긴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하며 유명 베이커리를 중심으로 오픈형 진열 방식에 대한 위생 논란이 불붙었다.
한경닷컴 취재 결과 해당 빵집은 16일부터 오랜 기간 유지해오던 오픈형 진열 방식을 중단하고 모든 진열 빵에 덮개를 씌웠다.
이는 해당 업체가 위치한 자치구의 요청에 따른 조치로 확인됐다. 업체 직원은 "최근 불거진 논란과 관련해 소속 구청의 요청을 받아 빵에 덮개를 설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구청 관계자도 "지난 15일 논란의 빵집에 권고 조치를 했고 이날부터 시정됐다"며 "빵을 오픈 진열해 판매하는 제과점에 대해 법적으로 포장이나 유리 덮개가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소비자 신뢰를 고려해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포장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논란이 된 영상 속 상황은 지난 12일 서울의 한 유명 베이커리에서 일어난 일로 한 아이가 이 베이커리 대표 메뉴인 '팡도르' 위에 뿌려진 슈가 파우더를 핥아먹자 이를 지켜보던 외국인이 촬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빵진열 위생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겨울철 니트나 코트에서 떨어지는 옷 먼지가 오픈형 빵에 닿을 수 있어 불쾌하다"며 "사진 예쁘게 찍으려고 덮개를 안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SNS 글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앞서 2017년에도 초등학생이 진열된 빵을 만지자 손님이 항의하며 알바생과 갈등을 빚은 일이 공분을 샀다.
문제의 빵집 직접 가보니…"오픈 진열 계속하다 끝내 덮개"
이날 기자가 다시 해당 매장을 찾았을 때, 모든 빵 트레이 위에는 투명한 여닫이 덮개가 설치돼 있었고 손님들은 이를 열고 닫으며 빵을 골랐다.
앞서 논란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15일 방문 때는 여전히 아무런 덮개 없이 빵이 진열돼 있었고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커피와 함께 빵을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지만 하루만에 달라진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20대 직장인 배모 씨는 "빵 회전율이 빨라서 금방 팔리니까 조금 찝찝하긴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인기 있는 빵집은 대부분 이런 진열 방식"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생이 걱정돼 방문을 꺼리게 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20대 대학생 이모 씨는 "예전엔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영상을 보고 나니 위생이 너무 걱정돼 이제는 사 먹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문모 씨도 "사람들이 빵 앞에서 이야기하며 침을 튀기는 모습을 보니 비위가 상해 커피만 마시고 나왔다"고 전했다.
오픈 진열 방식은 압구정, 연남동 등 전국의 유명 베이커리들에서도 여전히 쉽게 목격됐다.
기자가 방문한 서울 압구정의 한 유명 베이글 전문점 역시 수십 명이 줄지어 진열대 앞에서 대화를 나누며 빵을 고르고, 일부는 빵을 집었다가 내려놓기도 했다.
"위생 사각지대?"…오픈형 빵 진열, 전문가들 의견 엇갈려
포장 없이 진열된 '오픈형 베이커리'가 위생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식품위생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공기 중 미생물과 오염물 노출 위험을 우려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식중독 가능성은 낮아 법에 따른 제재는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권훈정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아무리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한다 해도, 매장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문이 수시로 열리고 닫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공기 중의 미생물이나 날파리 등 외부 오염 요인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며 "이런 환경은 매장을 얼마나 청결하게 관리하느냐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사람들이 숨 쉬고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미생물이 퍼질 수 있다. 오픈형 진열은 결코 위생적으로 완벽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개별 포장이나 덮개 등을 통한 보완 노력이 필요하다"며 "누군가 빵을 직접 만지거나 혀를 대지 않더라도 미세먼지와 함께 화학적·생물학적 오염물질이 유입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구옥경 충남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미생물이 충분히 번식해야 식중독이 발생하는데, 빵은 굽고 바로 진열되는 특성상 미생물이 증식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식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며 "이 때문에 법적으로도 제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식중독 유발 가능성만 놓고 보면 위험성이 낮지만, 위생은 미생물 증식 여부와는 별개로, 소비자가 얼마나 비위생적으로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업체가 진열과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행정당국도 강제 조치엔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한 자치구 위생과 관계자는 "빵 위에 덮개나 비닐을 씌우도록 강제하는 법은 없고, 현재는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단순히 덮개 없이 진열했다고 해서 위생 관련 제재를 가한 사례는 없다"면서도 "이물질이 실제로 혼입되거나 손님이 직접 빵에 접촉한 경우에만 민원을 통해 행정 제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