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묵 거국련·서울대교수회 회장 단독 인터뷰
“교육체계 몽땅 바꿔야 지방 거점대 살 수 있어”
지난 15일 교육부가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의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자 대학 사회에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20일 전국 국공립대 교수 단체들인 전국국·공립대학교수연합회(국교련), 거점국립대학교수연합회(거국련), 국가중심대학교수회연합회(국중련)는 공동 선언문을 내고 ‘학문 다양성을 고갈시킨다’ ‘지방대 서열화를 부추긴다’ 등 교육부의 지역인재 양성 방안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교수들의 가장 큰 걱정은 ‘대학 서열화’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단 점이었다.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임정묵 거국련 상임회장 겸 서울대교수회 회장은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정책인 것은 알겠으나 지금 방식으로는 결코 지역 대학을 제대로 성장시킬 수 없다”며 “학문 생태계에 대한 이해 없이 ‘선택과 집중’ 중심의 접근은 오히려 대학을 줄 세우는 데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교육부가 발표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 방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지역 산업과 대학을 모두 살려야 한다는 의도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현재 발표된 방식은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설계됐을 뿐 교육 현장의 준비 상황이나 교육 시스템을 고려하진 못한 것 같다. 결국 교육은 장기적인 시스템을 다듬어서 사람을 길러내야 하는 건데, 지금 정책은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 대신 사업적 측면만 많이 고려된 것 같다.
―거점대 3곳을 선별해 1000억원씩 투입한다고 하는데.
▷지역마다 대학마다 출발선이 모두 다르다. 이 상태에서 몇 개 대학을 선별해 집중 투자한다는 건 사실상 대학 서열화 크게 다르지 않다. 협력보다는 경쟁을 부추길 수 있고, 지역을 살리려는 취지에서 멀어져 일부 대학만 부각시킬 수 있다. 대학과 학문의 서열화부터 버려야 한다.
―서열화를 없애기 위한 방안은.
▷결국 교육 시스템 전반을 통째로 손봐야 한다. 지금 교육 시스템은 해방 직후인 1949년에 만들어진 교육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거의 모든 학생이 전과목을 공부하게 한 뒤 성적대로 학교를 가는 시스템을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선발할 수 있어야 하고, 학생들도 각자 성향에 맞춰 배우고 싶은 분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부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봤다.
▷산업 육성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게 맞다. 하지만 교육에선 다양성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보다 장기적으로 사람과 인프라를 축적하는 게 교육의 역할인데, 효율성에만 집중해 자꾸 경쟁을 붙이면 기반이 만들어질 수 없다.
―교육부 발표 이후 교육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벌써 각 대학끼리도 교류가 뜸해졌다. 예산 경쟁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는 대학 간 네트워킹 인프라가 만들어질 수 없다. 처음부터 선별 지원을 하는 대신, 일정 기간은 균등하게 지원해 각 대학이 잘하는 분야를 발굴하고 서울대 등 수도권 대학과 네트워크를 쌓을 기회를 줘야 한다. 선택과 집중은 적어도 그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
―균등 지원은 예산 나눠먹기가 될 거란 비판도 나오는데.
▷자칫 잘못하면 나눠먹기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정부가 단순히 대학에 사업을 할당하고 예산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대학들이 가진 기존 시설과 인적 인프라를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웬만한 주보다 면적이 작다. 그런데 미국 주 대다수는 거점이 되는 대학들의 인프라를 그 지역 연구자들이 공유하는 게 일상적이다. 오히려 예산을 아낄 수 있는 셈.
―기업이 교육 전반에 참여하는 ‘브랜드 단과대학’도 추진된다.
▷산업과 교육은 연결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고, 실제로 이미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다만 이번 정책은 산업 논리를 교육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정부가 성장 동력을 정하고 그에 맞춰 대학을 설계하는 방식인데, 이는 교육적 가치와는 다소 어긋난다. 대학은 다양한 학문이 공존하며 서로 시너지를 내는 곳인데, 중심이 될 산업을 먼저 정해놓고 이를 교육이 뒷받침하는 구조를 만들면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산업과 교육 간 협력은 필요하지 않나.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이 거의 대학하고만 협력을 한다. 꼭 대학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산업 분야도 많다. 그런 분야는 중학교, 고등학교와도 산학 협력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돕는다면 우리 학생들도 다양한 진로를 찾을 수 있고 기업들도 더 많은 인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AI 학부 신설 등 AI 특성화 전략에 대한 평가는.
▷AI는 결국 데이터 산업이다. 단순히 코딩 등 공학 기술 중심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우수한 AI를 위해선 다양한 도메인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도메인 지식을 갖춘 인재를 만드는 대신 단순히 AI만 잘 아는 인재를 만드는 건 의미가 없다. 허나 지금 정책은 AI를 기술 중심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우수 인재를 지방에 유치하겠다는 계획은 현실적인가.
▷돈을 무한정 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지방에서도 인재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 대학 외에도 지방의 정주 여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으면 좋은 대우만으로 해외나 수도권 인재를 지방으로 유입시키는 건 쉽지 않다. 따라서 기존에 지방에 있는 우수 인재들을 발굴해 더욱 지원해주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지방 대학에 대한 불신도 만연하다.
▷예산 낭비 사례가 있었기에 불신은 있을 수 있다. 이는 정부의 엄정한 평가로 해결할 수 있다. 예산을 늘리지 않더라도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한 뒤,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지원을 늘리거나 끊는 식으로 대학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 각 대학들도 재정 건전성을 개선하는 동시에 대학 간 교류 활성화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현재 지역인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서울대 등 흔히 말하는 주요 대학 교수들과 비교해도 지방대 교수들의 수준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거의 동등하다. 문제는 시설 등 연구 환경 수준은 주요 대학의 절반도 되지 않는단 것이다. 그렇기에 학부 인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에 앞서 지방 대학원을 수도권과 연결해주는 게 선행돼야 한다.
―세계 대학평가 200위권 대학을 만드는 게 정부의 목표라고 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QS 등 대학평가는 효용성이 무척 떨어진다. 과거에 우리 교육 인프라가 없을 시절에는 그런 기관의 평가나 컨설팅을 받는 게 의미가 있었겠으나, 이제는 그런 정량적인 평가가 무의미하다. 대학평가를 위해 무의미한 돈을 투자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서울대 연구자들은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 중인가.
▷캠퍼스 시설을 외부에 개방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지역균형 전형을 확대하는 등 학생 중에서 지역 인재의 비율도 계속 늘리는 중이다. 최대한 지역 대학에 서울대가 가진 인프라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점은 없나.
▷대학의 자율성이 부족하다. 특히 ‘학교는 교육부장관의 지도·감독을 받는다’는 고등교육법 제5조를 폐지해야 한다. 학교마다 특화된 인재를 기를 수 없이, 기존 교육 시스템이 원하는 인재만을 양성해야 하는 구조를 먼저 고치지 않는다면 지역인재 양성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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